▲원세훈, '국정원 대선개입' 파기환송심 공판 출석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7월 10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권우성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은 경찰수와 검찰수사, 국정조사 등을 거쳤고, 핵심 인물인 원세훈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이 오는 8월 30일에 열린다. 하지만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의 전모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대 국회 동안 국회 정보위에서 활동한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전모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라며 "검찰조사는 그 전모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대로 전모를 조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 의원은 "현재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심리정보국의 '단' 한 곳에서 한 것만 알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고 있는 것은 (전모의) 몇 분의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만 봐도 엄청난데…." 먼저 국정원 댓글공작이 3차장 아래 심리정보국에서만 이루어졌을까 하는 점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홍어 종자" 등 호남과 야당 정치인, 여성을 폄하·비하하는 글을 올린 아이디 '좌익효수'(유아무개씨)가 2차장 산하의 대공수사국(안보수사국) 소속으로 확인되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신경민 의원은 "좌익효수가 심리정보국이 아닌 대공수사국 소속이라는 점만 봐서도 심리정보국만 댓글작업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국정원 내 다른 부서에도 댓글작업 할당이 내려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3차장실에서 다 했다는 주장을 믿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라며 "국정원이 총체적으로 조직을 동원해 댓글공작을 진행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댓글공작 최초 제보자 김상욱씨는 "심리정보국 요원들은 매일 공격하고 퍼뜨려야 할 내용이 담긴 '논지'(국정원 내에서는 '지논'이라고 표기했음-기자 말)라는 지시문건을 받았다"라며 "심리정보국은 댓글공작을 실행하는 단위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논지'를 주는 등 댓글공작의 실행을 뒷받침해준 조직이 별도로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그렇다면 심리정보국 70여 명에만 그치지 않는다"라며 "국정원 전체가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댓글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민주당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진상조사 특위' 간사를 지낸 김현 전 의원은 "2차장 아래 있는 박원동 국익정보국장은 원세훈 원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인물이었고, 이종명 3차장은 천상 군인출신이어서 잘 모르고, 오히려 억울해하는 분위기였다"라며 "그런 점에서 논지는 (차문희) 2차장실에서 선정해 배포했을 수 있다"라고 추정했다. 김상욱씨도 "댓글작업은 정치감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심리정보국 요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댓글작업은 국정원 내부에서 철저히 분업화돼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사항을 담은 '원장 지시·강조말씀' 자료에서 국정원의 정치관여행위가 3차장 산하 심리전단의 업무로 한정된 바 없고, 도리어 국정원 전 직원들이 해야 할 일로 강조되고 있다"라며 "따라서 3차장 산하 심리전단 외에 타부서, 그리고 국정원 1·2차장 산하 부서와 직원들도 여론조작행위 등에 나섰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라고 지적했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에는 민들레-국가폭력피해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가 참여하고 있다. 지난 6월 21일 '국정원개혁위가 조사해야 할 국정원 적폐리스트 15가지'를 발표했다.
국정원 전직 직원이나 탈북민도 댓글공작에 동원?국정원이 내부직원들뿐만 아니라 외부사람들까지 댓글공작에 끌여들인 흔적도 나왔다. 민간인인 이정복씨가 지난 2012년 대선 직전까지 국정원 심리정보국 요원이었던 김하영씨의 댓글작업을 도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지난 2013년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이정복씨에게 매달 280만 원씩 11개월간 지급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국정원이 외부조력자(PA)이정복씨에게 총 3080만 원의 '댓글 알바비'까지 지급한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심리정보국 3팀 5파트장인 이아무개씨가 이정복씨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90학번 동기라는 점이다. 김현 전 의원은 "이정복씨는 김희정 전 의원이 총선에 출마했을 때 김 전 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왔고, 이아무개씨는 김하영씨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해줬다"라며 "김희정-이정복-이아무개 등 '연세대 정외과'로 얽힌 관계망에도 주목하고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상욱씨는 국정원 전직 직원들이 댓글공작에 동원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김씨는 "국정원 퇴직 직원들에게 보수를 지급하고 댓글작업 등을 시켰을 수 있다"라며 "여기에 양지회가 동원됐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1990년 8월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양지회'는 현직 직원들의 공제회인 양우회(옛 양우공제회)와 달리 퇴직 직원들의 친목단체다.
하지만 이렇게 국정원 댓글공작에 동원된 '외부조력자'의 규모와 운영체제 등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최근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지난 5월 "국정원이 '알파팀'이라는 민간여론조작조직을 운영하며 자금을 지원했다"라고 보도한 것을 헤아리면 외부조력자의 규모는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알파팀'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차후 다룰 예정임-기자말).
김상욱씨는 "외부조력자를 어떻게 운영했는지는 '알파팀'으로 드러났다"라며 "알파팀을 심리정보국에서 운영한 것 같지 않다, 누가 운영했는지 운영주체를 조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심리정보국 요원과 알파팀 팀원들이 움직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라며 "박원동 국장이 이끌던 국익정보국에 보수단체들을 지원하는 팀이 있는데 거기에서 알파팀을 운영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국정원감시네트워트는 "얼마나 많은 외부 조력자를 동원해 여론조작행위를 지시했는지, 그들에게 지급된 자금의 정확한 규모는 얼마인지 등을 밝혀야 한다"라며 "더 나아가 민간인 외부조력자 중에서도 신분상의 지위가 취약한 북한이탈주민들도 포함돼 있는지, 보수단체·보수인터넷매체 운영자에게도 여론조작성 활동과 기사·칼럼 게재를 사주했는지 조사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국정원 댓글공작에 쏟은 예산은 얼마? 검찰은 국정원 요원들이 1157개의 트위터 계정을 이용해 총 78만여 건의 정치·대선 관련 트윗글을 작성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1심은 175대 계정에 11만 건, 2심은 716개 계정에 27만 건의 글만 증거로 인정했다. 게다가 대법원은 716개 계정 가운데 422개 계정과 그 계정들을 이용한 트윗·리트윗글을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트위터 본사가 미국에 있어서 국제공조가 필요한데 법무부의 비협조적 태도로 인해 검찰의 트위터 부문 수사가 원활하지 않았다"라며 "따라서 국정원 직원 등이 여론조작행위에 사용한 트위터 계정의 총 규모를 정확하게 조사하고 이를 통한 여론조작행위 규모도 전면 조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댓글공작에 얼마의 예산을 사용했는지도 재조사해야 할 쟁점이다. 국정원이 지난 2013년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정보국은 2009년 100억여 원, 2010년 200억 원, 2011년 150억여 원, 2012년 150억여 원 등 총 600억여 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총 600억여 원의 예산은 모두 기계장비 구입비였다.
이와 함께 이정복씨 등 외부조력자들에게 준 '댓글 알바비'가 심리정보국 예산이 아니라 국정원의 특수활동비에서 나온 것이라고 국정원이 해명한 바 있다. 이렇게 사용한 국정원 특수활동비와 심리정보국 예산을 합치면 국정원 댓글공작에 들어간 예산 규모는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김현 전 의원은 "심리정보국 예산 600억여 원은 기계장비를 구입한 것으로 돼 있다"라며 "매년 기계장비를 샀다고 하는데 진짜 기계장비를 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600억여 원은 외부조력자 비용과 오피스텔 구입비 등이 들어간 금액이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원세훈 원장의 'MB독대보고'에 댓글공작이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