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령(한계령)4월 2일 잠시 찾았던 고향 오색령엔 아직 겨울이 진득하게 눌러앉아 있었다. 이미 전국 어디서나 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양양군의 8경 가운데 한 곳인 오색령은 누가 보더라도 봄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오는 봄은 기어코 오래지 않아 이곳에도 산새가 알을 품고, 꽃들이 일순간 피어난다.
정덕수
천성적으로 바람 같은 놈이라는 욕을 들으며 살아왔다. 그 욕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 내가 바람을 닮으려 한다는 걸 모르면서, 막연히 자신들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바람 같다고 욕을 했다.
그랬다. 난 분명히 바람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 서풍인 듯 하면 어느 순간 북풍이고, 동풍인가 하면 남풍으로 돌변하는 반골기질까지 지닌 걸 숨길 일도 이제는 없다. 천성이 그리 생겨먹은 걸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지금 잠시 잠 재워둔 기질이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 스스로 앞가림을 할 정도만 되면 다시 정처(定處)없이 바람으로 떠돌지도 모른다.
현자(賢者)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도자(求道者)라고 할 수도 없으면서 마치 구도자가 고행을 하듯 세상을 향해 크게 소리치고 싶을 때나, 주어진 환경에 대해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 지탱하기 힘들면 주로 산을 찾아 행동했다. 산을 오르기 위해 출발하면 금방 다리가 아프고 왜 이 길을 들었을까 후회한다. 마찬가지로 때로는 내가 이 세상에 오게 된 그 자체에 대한 불만도 가졌던 적도 있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행위가 어느 정도 참고 오르다 보면 서서히 시야가 트이고 점차 먼 곳을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긴다. 그러나 여전히 걸어야만 목적한 정상을 당도할 거란 걸 알기에 발길을 멈출 수는 없다. 발은 고통스럽고 숨은 가빠올 지라도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은 고행의 길이라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애써 산을 찾고, 그를 통하여 삶의 목적을 새삼 묵직하게 다독이는 기회로 여긴다.
서울도 이미 완연한 봄이니 양양도 마찬가지로 개나리와 진달래 흐드러진 봄이겠다. 복숭아와 살구, 목련도 이미 절정이겠다. 하지만 그렇게 온 봄도 아직 이르다 말 하게 되는 풍경 또한 양양군은 지녔다. 구룡령이나 오색령은 아직 얼마간 더 겨울을 묵직하게 지켜내기에 이곳까지 봄이 당도하려면 보름 이상 더 기다려야 된다.
친구와 강릉을 거쳐 울진을 다녀오기로 하고 나섰다. 청평에서 일행과 만나기로 했으니 자연스럽게 양구를 거쳐 오색령을 경유해 강릉으로 가기로 했다. 고속도로로 가자는 걸 굳이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고속도로나 양구를 거쳐 오색령을 넘어 가는 것이나 거리는 크게 차이 없고, 멋진 고향의 풍경을 비갠 뒤 햇살 좋은 오전에 푸짐하게 눈에 담을 수 있으리란 욕심에서다.
태릉에서 청평을 향할 때 멀리 두터운 안개가 산자락을 누르고 있었다. 강변을 벗어나면 안개가 걷히리라 생각했으나 안개는 양구를 지나 광치터널을 통과할 때도 여전히 산들을 무겁게 눌렀다. 광치터널을 빠져나와 한참을 달려 오색령을 거의 다 올랐을 때 거짓말처럼 안개는 더 이상 산을 누르지 않고 깨어질 듯 새파란 하늘에 산들이 온통 눈을 뒤집어 쓴 채 자태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