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첫째를 봐주겠다며 아이 낳자마자 우리 옆 동으로 이사까지 왔던 엄마가 더는 애를 못 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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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너무 힘들어서 이제 애 못 봐주겠어. 둘째 낳으면 몸조리 한 달하고 첫째 데리고 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일 그만두고 들어앉으면 안 돼?"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첫째를 봐주겠다며 아이 낳자마자 우리 옆 동으로 이사까지 왔던 엄마가 더는 애를 못 보겠다고 했다.
엄마가 힘들다는 것은 매 순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 년에 두 번은 해외여행도 보내주고, 여름 대비 에어컨도 설치해주고, 냉장고가 고장 나면 12개월 할부로 냉장고도 사드렸다. 애 볼 때 소파가 필요하다, 싱글침대가 필요하다, 이렇다저렇다 하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상품을 주문했다. 엄마가 애 안 봐주겠다고 하면 큰일이니 눈치가 보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결제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저렇게 눈치를 본 이유는 하나였다. 밤낮없이 첫째가 엄마 집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근이 잦았고 주말 근무가 거의 매주 있었기 때문에 첫째를 데리고 올 시간이 없었다. 첫째가 처음으로 뒤집었을 때도, 처음으로 엄마라고 말을 했을 때도, 걸음마를 막 떼던 순간에도 나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2015년 여름, 나는 출산한 지 32일 만에 출근했다. 사무실 업무가 폭탄처럼 쌓여서 안 나갈 수가 없었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도 노트북을 갖고 들어가서 일을 했다. 심지어 출산 10일째 되는 날은 사무실에 나가서 일하고 다시 산후조리원으로 복귀했다.
"뭐 그런 회사가 있냐, 너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냐"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아주 작은 비영리 단체였고 내 업무를 대체할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1인 출판사까지 운영했기 때문에 나 아니면 안 되는 일이,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 진짜로 있었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죄책감이 밀려왔고 어느 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못 썼으니 주 4회만 일하고 하루는 쉬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평일 하루를 쉬면서 한 일이 아이와 함께 문화센터 가기였다. 조리원에서 만났던 엄마들과 문화센터 수업이 끝날 때마다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왔는데 갈 때마다 나는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얘는 이유식 얼마나 먹어요? 우리 애는 100cc를 못 먹어요."
"이 과자 먹여봐, 애가 진짜 좋아해."친정엄마가 만들어주는 이유식을 먹던 우리 첫째가 얼마나 먹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고 이유식의 양을 몇cc라고 이야기하며 봐줘야 하는 줄도 몰랐다. 아기가 과자를 먹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 순간 나는 벽이 되고 싶었고 땅 밑으로 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떠났다. 내가 나쁜 엄마라는 생각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단축근무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업무 처리를 위해 계속 전화를 걸었다. 급한 업무는 눈감을 수 없어서 집에 와서 다시 노트북을 켰다. 그렇게 쉬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날이 이어졌다.
어느새 나는 '나쁜 엄마'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