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정문 전경.
하지율
한국의 보수 권력은 '잘살아보세'라는 동물학적 생존의 담론으로 이상, 배려, 연대 등의 인간적 가치를 탄압해 왔다. 그러면서도 반세기 넘게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해결은커녕,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권력이 예술을 어떻게 대우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한겨레>는 최근 김영나 중앙박물관장의 '보복경질'에 대해 보도했다. 프랑스 명품업체들이 중앙박물관 측에 상업적 전시를 유치할 것을 종용하면서 청와대와 접촉했고, 이후 대통령이 '명품전'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박물관장을 불러 전시를 성사시키도록 압박했으나, 관장은 전시의 상업적 성격이 공공박물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난처해했고 결국 전시가 무산되었다. 이후 박물관장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현 대통령의 예술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기막힌 일들이 수년 전부터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의 사주와 강요 속에서 대학들이 예술학과를 강제로 없애거나 통폐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구조조정'에는 대학 운영을 '돈벌이'와 구분하지 못하는 재벌 재단 측의 반교육적인 사고구조도 큰 몫을 한다.
예컨대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은 2010년 18개의 단과대학을 10개로, 77개의 학과를 46개로 줄이는 대규모 통폐합을 단행한 뒤로 지금까지 '대학구조개편의 모델' 대접을 받고 있다. 물론 핵심은 '장사'가 잘 안 되는 학과나 취직과 직결되지 않는 학과들을 없애는 것이다. 안 그래도 취업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정부는 취업률을 대학평가에 반영해, '비인기학과'를 없애는 대학들에 막대한 돈을 안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가장 큰 수모를 겪는 학과는 철학, 외국어 등의 인문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음악, 미술, 체육 분야다. 직원들의 밥줄 끊는 것을 '경쟁력 제고'로 자랑하는 한국 기업들이 구조조정 절차를 학생과 교수와 더불어 숙고하고 토론할 리 없다. 상명하달식 결정과 일방적 통보가 보통이고, 이렇게 속전속결로 '거사'를 처리한 대학일수록 오히려 후한 보상을 받고 있다.
대학의 정원 줄이기와 정부의 '취업률' 압박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전국 각지에 '학과 통폐합 쓰나미'를 몰고 온 것은 2014년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대학특성화사업'과 '대학구조개혁평가'였다. 정부는 학과 통폐합을 더욱 압박하기 위해 5년간 무려 1조 2000억 원을 미끼로 내걸었다. 같은 해 중앙대는 인문계열학과 9개를 4개로, 예능계열 14개 학과를 7개로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그 결과 76억 원이 넘는 지원을 받으며 정부의 재정 지원사업을 싹쓸이했다.
정부는 학과를 '창의적'으로 통폐합하는 학교에 특별히 후한 점수를 주었는데, 그 결과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프랑켄슈타인 학과'들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2015년 12월 경희대 부총장은 학생들과 면담하는 가운데 국문학과와 전자전파공학과를 통합해 웹툰창작학과를 만들 수도 있다는 학과 융합의 '예시'를 들었다. 건국대는 동물생명과학대와 생명환경과학대를 합해 가칭 '융합생명과학대'로 통합하기로 잠정 결정했고, 이화여대에서는 '뷰티 트랙'과 '탤런트 학과'를 새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뒤에 터져 나온것이 신라대의 무용학과, 음악학과, 미술학과의 폐과 통보였다.
'쇼팽 광풍', 왜 하필 지금?예술학과를 없애서 국민들이 부유하고 행복해진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통폐합의 풍랑이 몰아친 지난 수년 동안 취업난은 더 악화되었고, 국민들의 삶은 더 비참해졌다. 오히려 대학에 '비인기학과' 대세였던 1980-90년대에 청년들은 아무 문제 없이 취직했다.
신라대가 무용학과를 신설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였다. 사람들이 단순히 '먹고사는' 것을 넘어 삶 속에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학과는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세'를 내세운 딸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쇼팽 바람'이 불었을까? 나는 대학가에 운동권이 살아나고 서점에 마르크스가 돌아오는 이유와 같다고 생각한다. 자유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저항의 중요성을 깨닫듯, 예술이 사라져가는 암담한 현실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분출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애틋한 가락에 잠시 귀 기울일 여유마저 허락하지 않는 현실, 우리는 이렇게 '생존'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정부가 앞장서 벌여 온 예체능 학과 폐지는 '도둑이 매를 드는' 뻔뻔한 적반하장의 결정체다. 밥도 먹여주지 못하는 주제에, 배고픔을 잊고 꿈꾸는 청년들의 뺨을 때리는 꼴이니 말이다.
선거에 앞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지난 반세기 내내 '빵' 하나로 당신의 표를 구걸했던 권력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약속했던 빵은 주지 못하면서 시든 장미마저 짓밟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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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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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열풍' 조성진... 박근혜 부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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