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오늘 회의는 비공개로 하겠습니다"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와 김한길 상임선대위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유성호
그러면 지금 안철수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나?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가 이끄는 국민의당은 반새누리(반박) 반더민주(반노) 두 가지를 모두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공천한 것을 보면 후자를 타깃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 안철수의 지향점은 그렇지 않았다. 안철수는 야권 재편을 통해 선거 승리에 갈증을 느끼는 야권 지지층의 불만을 해소하겠다는 그야말로 담대한 구상을 제시하면서 탈당했다. 그러면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재 더불어민주당)은 만년 2등에 머무는 기득권화된 세력이라고 맹공을 펼쳤다.
야권 재편을 위한 방법으로, 안철수는 신진보 노선에 부합한 새로운 인물로 구성된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들이 기존 낡은 진보인 더민주를 대체할 때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런데 현재 국민의당의 모습을 보면 그의 주장을 납득하기 힘들다. 국민의당 공천을 보면 비례대표 1, 2번을 제외하고 절대 다수가 기존 민주당 계열 출신 정치인들이다. 더군다나 중앙 단위든 지역단위든 상당히 오랜 기간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활동한 정치인이다.
여기에는 정치적 비전 및 정체성에 기반한 균열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계급, 민족, 종교, 문화, 인종, 산업기반 등등 정치세력이 대변하는 가치의 균열이 크게 나타날 때 정치적 분화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더민주/국민의당 사이에는 그러한 차이점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기존 친노/반노 계파 갈등에 따른 분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분화는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내에 존재하는 반노 정서에 크게 영향받은 바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중적 반노 정서를 지금 안철수를 비롯한 국민의당 정치인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활용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필자는 매우 부정적이다.
오히려 반노를 하나의 이데올로기처럼 확장하여 반노무현주의(Anti-Rohism)가 형성되도록 유도하거나 방조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은 생산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적으로 안철수는 새누리당과 더민주 모두 심판하겠다고 나섰지만 현재 수도권 국민의당 후보군을 보면 그의 말과 달리 국민의당의 창끝은 더민주를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다.절대 다수가 민주당계열 정당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며, 인물경쟁력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달리 새누리당 계열 정당에서 결합한 인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안철수는 그가 말한 비전과 다르게 실제 현실에서는 반노에 기반한 정치세력화에 몰두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그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이것은 안철수에게도 야권 전체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되는 일이다.
반노를 이용하고, 반노에 이용당한 안철수안철수는 29일 제주에서 발표한 '미래선언'에서 제4차 혁명에 맞는 산업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매우 의미있는 말을 했다. 처음부터 안철수는 이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그가 탈당한 것은 잘못되었지만 그는 탈당을 했어도 야권 확장에 기여해서 자신의 정치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강조한 실용진보 노선에 부합한 신진 인사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벤처 정당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주변에는 여러 기존 정치인들이 함께 하려고 했겠지만, 안철수는 아예 기존 정치인들을 배제하거나 혹은 같이 해도 소수 정예 인사들로만 같이 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래서 이들이 자리잡은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오히려 야권단일화를 공세적으로 제시했으면 정치적 바람을 타고 아마도 더민주 후보들을 제치고 대부분 단일후보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현실적 당세를 고려해서 상당수 지역은 더민주 후보를 밀어줬으면 현재와 같은 야권연대 국면에서도 안철수가 더민주를 오히려 리드하면서 정국의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안철수는 야권을 강화시키는 보물로서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는 반노 정치 세력과 손을 잡았으며 안철수의 정치적 장점과 어울리지 않는 수도권 지역 기존 민주당 계열 토호 정치인들을 받아들여 공천을 하였다. 그래서 현재 야권연대 국면에서도 계속 수세적인 입장에 몰리게 된 것이다.
반노 정치세력은 대중적 반노 정서를 이용하기만할 뿐 이를 생산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에너지로 발전시킬 수 있는 마인드와 능력이 사실상 없어 보인다. 이들은 친노의 무능, 한계, 실책을 비판하고 그 주변에서 정치적 생존을 도모하는 위성정치만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안철수가 지향하는 신진보 노선과는 상관이 없는 인물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안철수가 말한 낡은 진보에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안철수가 말하는 반새누리-반더민주 라는 정치적 노선이 현실 속에서는 다르게 관철되어 반더민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15일 정도 남은 총선 일정을 고려할 때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안철수는 한 가지 알아야 한다. 반노를 이용했든 혹은 반노에 이용당했든 이 모두 안철수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안철수라는 구심점이 있기 때문에 국민의당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총선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총선 후 안철수는 매우 큰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그가 지금까지 받았던 여러 비난과는 성격을 달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이러한 모든 문제의 시작이 바로 반노에 경사된 그의 정치 전략에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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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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