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새누리당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치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파벌정치를 설명하는 '후원주의(Clientelism)' 라는 개념이 있다. 이 개념은 보호자(Patron)과 피보호자(Client) 간의 관계를 상정하는데, 보호자는 피보호자에게 보호를, 피보호자는 보호자에게 충성을 제공하는 일종의 묵시적 신뢰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아마 정치적 관계에서 보호자의 보호는 자신의 그룹 안에 있는 피보호자에게 공천을 주거나 권력 일부를 나누어 주는 것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더 강해져서 보호자와 피보호자가 서로 전적으로 의존하는 '정서적 유대관계'로 발전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는 상호 간 신뢰를 넘어 공동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면서 나타나는데, 흔히 이야기하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여기에 잘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후원주의적 정치 문화는 권력자, 즉 보호자가 자신의 정치적 능력이 아닌 후원자, 즉 피보호자의 후원과 충성을 기반으로 권력을 획득한다는 특징 때문에, 필연적으로 '시민 문화의 미성숙'과 관련된다.
당사자가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카리스마나 정통성을 가진 사람의 파벌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표를 준다는 것은, 결국 그 사회 내 유권자들의 시민 의식이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새누리당에 정말 잘 들어 맞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진박' 들에게 권력을 나누어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공천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경쟁적으로 자신이 박 대통령이 말하는 '진실한 사람'임을 끊임없이 어필할 것이고(사실 지금도 어필하고 있고), 이번에도 박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들에게 표를 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이 가진 카리스마와 (박 대통령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를 계승한다는 일종의 정치적 정통성이 '박근혜의 사람'이라는 매력적인 이미지를 먼저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이나 파벌이 무슨 정책을 내세우든 그건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정치학에서는 '복고적 정통성(Backward Legitimacy)'라고 하는데, 이는 정치인이 과거의 계승을 주장하며 유권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그것을 통해 일종의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보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적 상황은 아니다. 애초에 후원주의와 복고적 정통성 모두 유권자가 정치인의 정책을 보고 투표하기보다는 유력자나 과거의 향수 등 직접적이지 않은 요인에 의해 투표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즉 시민의식이 부재하다는 것과 정치권은 그것을 조장하고 이용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파벌정치의 한계, 새누리당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그런데 파벌정치는 이번 새누리당 공천 파동 같은, 내홍에 필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당장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를 사퇴하게 되는 맥락에서, 유승민의 지지자들이 오히려 결집하게 되었고 '진박' 이 아닌, 즉 '진실한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들 또한 진박과 더욱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리고 작금의 사태가 일어나며, 파장이 상상 이상으로 커지게 된 것이다.
즉 며칠 동안 새누리당 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중심으로 한 '진박'이라는 파벌, 그리고 파벌정치의 배타성이 만들어 낸, '자충수'라고 밖에 볼 수밖에 없다.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84년 한국시리즈에서 어깨의 인대가 두 개 끊어질 정도의 투혼을 보여준 최동원 선수를, 선수협 창설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트레이드를 통해 내친 롯데 자이언츠가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된 것도 이와 비슷하다. 롯데가 수많은 팬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하는 계기를 만든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 '진박'은 유승민과 친박이 아닌 이들의 등을 돌리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