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영도다리 고뇌'를 전한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조선일보
이처럼 여야 막론하고 '권력을 달라'고 외치는 정치인들에게서 '사회를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겠다'는 비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그들만의 천박한 밥그릇 싸움만 있을 뿐이었다.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가 말하듯 "87년 이후, 아니 그 전까지 포함해도 이번 선거처럼 '정책'이 선거에서 사라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김동춘, '바닥을 향한 질주'를 되돌릴 수 있을까?, <한겨레> 3월 23일 자 중에서)
4년마다 돌아오는 '민주주의의 축제'를 맞아 온 사회의 에너지가 선거로 쏠리고 있다. 그런데도 이 펄펄 끓는 에너지가 권력자들의 권력 놀음에 모조리 처박히고 있으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택시 기사, 구둣방 아저씨, 직장 동료 등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정치 얘기를 해봐도 모두 저들의 권력 다툼에 대한 내용뿐이다. "막장 드라마보다 재미는 있대"라는 말이 요즘 정치에 보내는 그나마 '최고의 칭찬'이다.
정치인 '권력 놀음'에만 주목하는 한국 언론왜 이럴까? 왜 한국 정치에는 오직 '목적뿐인 권력'만 판을 치는 걸까? 권력을 통해 구현해야 할 다양한 비전과 담론은 대체 어디로 실종된 걸까?
물론 한국 정치 자체에 이렇다 할 미래지향적 콘텐츠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언론이 정치인들의 권력 놀음에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정작 중요한 정책·공약에 대해서는 소홀한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나마 남아있는 콘텐츠마저 말살해 버린다.
지난 필리버스터 정국에서 드러난 일부 의원들의 깊이 있는 연설들을 돌이켜 보자. 8시간, 10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뱉어내던 말의 향연은 '한국 정치도 충분히 큰 그릇에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수많은 시민이 필리버스터에 열광한 것도 이 같은 한국 정치의 저력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혼'보다는 '이성'에 의지하고, '주먹'보다 '말'을 앞세우고, '주술이 어긋난 문장'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며 시대정신과 가치를 설파하는 정치인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그 말들은 다 어디 갔을까? 24시간 생중계하던 국회TV와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언론이 특별 가동을 멈추자, 제도권 언론 속에서 '뼈 있는 말'은 다시 자취를 감췄다. 남은 건 권력을 탐하는 정치인들의 제 밥그릇 두들기는 소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