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함께 받은 훈련생들이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열린 수료식을 마치고 함께 즐거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대를 가기 위해 1년 노력할 수 있어? 라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할 거다. 시간은 금이니까. 그런데 정말 1년 노력해서 원하는 군대에 붙은 친구가 있다. 김군도(21)는 군대를 가기 위해 1년 동안 노력했다.
"휴학하고 군대 가려고 했지. 1년이 될 줄은 몰랐어. 빨리 군대 갔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학교 다닐 걸 생각한 적은 없어. 학교 다니기 싫어서 군대 가려고 했거든."군대가 피난처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CC(캠퍼스커플)였다 헤어지고 학교생활이 불편해서 군대로 도망친 이야기는 선배들이 새내기한테 항상 해주는 말이다. 나 또한 학점이 안 나와서 군대로 도망치자는 생각이 있었다. 어떤 이유로 가든 가고 싶을 때 군대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군대 가기 힘들다는 거 알고 있었어. 대학 가기보다 힘들다고 하잖아. 특히 내가 가고 싶었던 의무경찰은 더 힘들었지. 군대 가려면 재수는 기본이야."군도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태연하게 말했다. 군대 재수가 기본이라니. '아프니까 청춘' 처럼 그럴싸하다. 하지만 명문대를 가려는 것도 아닌데 군대를 가기 위해 재수하고 싶지 않다.
"근데 문제는 우리 말고는 이 사실을 잘 몰라.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를 군대 안 가는 백수처럼 본다는 거지. 군대를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건데 말이야. 집에서도 눈치 보이고. 영장은 또 왜 안 나오냐고 물어봐. '대학생에겐 영장이 안 나옵니다'."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영장 안 나왔냐고 물어보실 때마다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대학교를 다닌다고 자동으로 영장이 안 나옵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영장이 아니라 군대를 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내 또래 말고는 이 사실을 잘 모른다. 제대한 형들이 앵무새처럼 군대 빨리 가라고 할 때마다 대답하기도 귀찮다. 몇 년 사이에 경쟁률이 더 심해지고 달라진 상황을 모른다.
시험? 성적? 이게 군대와 뭔 상관?"내가 의무경찰만 가려고 했던 이유는 다른 곳보다 편해서지. 경쟁률은 세지만 무작정 입대를 기다리는 것보다 (의무경찰 지원은) 내가 잘하면 되는 거니까."(김군도)일반 모집병을 지원하고 기다리다가는 지친다. 기다리는 게 막연하다면 시험이나 면접을 보는 전형도 있다. 나도 필사적으로 지원을 해 봤다. 내가 시도한 곳은 의무경찰과 공군이다. 의무경찰 시험을 2번 봤는데 첫 번째는 완전 꼬였다. 임시신분증을 가져갔지만 유효 기간이 하루 지나 있었다. 시험도 못 보고 쫓겨났다.
다행히 두 번째는 성공적, 이었는데 과정만 성공이었다. 인성인지 적성인지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300개가 넘는 문항을 마킹했다. 그리고 신체검사와 체력검사 차례였다. 여기서 반 정도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팔굽혀 펴기를 구령에 맞춰 20개를 하는데 느려서 그런지 힘들었다.
체력검사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점심을 먹고 면접을 기다린다. 지원을 한 순서대로 기다리지만 거의 운이다. 운이 없었던 나는 4시간 가량 기다렸다. 면접장에 들어가니 면접관이 편한 말투로 말했다.
"여기까지 오신 분들 대단합니다. 충분히 자격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안타깝군요. 떨어지시더라도 낙담하시지 마시고 다시 지원해 주세요. 여러분이 못한 것이 아니에요." 이 말을 듣자 한숨부터 나왔다. 결국 떨어졌다. 내가 못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두 달 전에 의경 경쟁률은 20:1이었다. 19명을 제친 최후의 1인은 얼마나 대단할까 생각하며 다시 지원을 했다.
공군과 의무 경찰은 동시 지원이 가능해서 공군도 지원했다. 공군을 지원할 때는 21개월 플러스 3개월을 걱정하며 지원을 했다. 일반 현역보다 3개월 더 복무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휴가가 많고 그나마 경쟁률이 낮아 지원을 했다.
성적과 출석, 봉사 등 학생부의 기록을 바탕으로 1차 합격이 된다. 최종 합격은 면접을 통해 결정된다. 나는 면접도 보지 못하고 1차에서 모두 떨어졌다. 익숙했다. 다시 지원할 거다. 고된 훈련에 적합한 체력을 갖추고 있는지 시험은 그렇다 치고, 성적, 봉사가 입대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스펙이라는 이 시대의 굴레가 군대까지 침범한 듯하다.
이유도 잘 몰라, '군대 보내달라' 민원만 3만 건"내 생각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똑똑하고 계획적이라 경쟁률이 센 것 같은데? 다들 빨리 가라 빨리 가라 하니까." (김군도)"우리 나이 남자가 베이비 붐이래." (장재원)"복무기간도 짧아졌는데 왜 자리가 없는 건지 모르겠어." (정의석)병무청에 따르면 현재 입영대기자가 5만 명이라고 한다. 경쟁률은 2012년에 2.8:1이었지만 계속 급증하여 2015년에 7.7:1이 되었다. 3년 후에는 10만 명, 2020년에는 약 17만 명의 입영대기자가 생긴다.
높아지는 경쟁률처럼 입영대기자 또한 많아질 전망이다. 이제 군대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청년들은 아직 이유를 잘 모른다. 유력한 이유는 베이비붐과 청년 체감 실업률이라고 짐작한다. 1991년생~1995년생 남자들은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다. 체감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빨리 군대를 가자는 심리도 생겼다.
"길훈(가명)이는 군대 가려고 매일 병무청 게시판만 보면서 공석 자리만 체크하더니 결국 신청해서 갔지. 신청하고 4일 만에 군대로 떠났어. 불쌍한 놈."(정의석)길훈은 병무청에 공석이 있는지 수차례 전화를 했다. 그의 부모님은 병무청에 민원까지 넣었다. 이런 사례는 굉장히 많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병무청에 '제발 군대 좀 보내달라'는 민원이 한 달에 3만 건씩 접수된다고 한다.
공석 자리를 노리는 것 또한 힘들다. PC방에 가서 구글 크롬으로 접속해 광클(마우스 클릭을 빠르게 한다는 은어)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4일 안에 군대 가는 준비를 하기란 촉박하다. 촉박하더라도 빨리 갈 수만 있으면 고마운 요즘이다.
군대를 못 가니까 더 불안해- 21살 정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