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코끼리물범- 현재, 처참한 유전적 다양성으로 숫자만 늘어난 북방코끼리물범. 다양성이 한 번 파괴되면 절대 회복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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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에 대한 내용이라면서 왜 뜬금없이 물범 얘기를 했을까. 생물학도의 눈으로 본 국정교과서 공방은 이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지켜내려는 측과 다양성을 없애려는 측의 대립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국정교과서 편찬을 강행하려는 쪽은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추진력과 전투력을 보여주며 일사천리로 일을 해결하려 한다. 생물학도의 입장에서 국정교과서 논쟁을 보면 기가 찬다.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학문과 교육이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진화의 핵심, '생존과 번식'은 개체군의 다양성이 확보된 전제 하에 가능하다.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지금 당장 유리해보이는 형질이라도 한 번 환경변화가 일어나면 죄다 불리한 형질로 바뀌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경쟁도, 자연선택도, 도태도, 변이도, 진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 가지. 딱 한 가지로만 유전자상이 결정되어 진화의 가능성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과학에서조차 진리가 절대 개념이라 단언치 않는다. 과학철학자인 토마스 S. 쿤(Thomas Samuel Kuhn)의 명저 <과학혁명의 구조>에 따르면 과학의 패러다임은 견고하지만 혁명의 과정을 통해 변한다. 그렇기에 과학은 그 당시 패러다임에 비추어 자연현상을 해석, 진리로 정의한다.
하물며 자연현상도 아닌 인간의 행적을 다룬 역사에 하나의 진리란 있을 수 있겠는가. 역사는 단연코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렇기에 다양성은 필히 확보되어야 한다. 과학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상대성과 다양성 내에서 나온다.
역사로 다시 돌아와 보자. 국정교과서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역사적 다양성의 획일화'라 말할 수 있겠다.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다양성의 획일화라는 어구 자체가 굉장히 폭력적으로 들리는 것은 필자 본인뿐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자칭 보수 세력의 친일 사관, 유신 미화 등 옳고 그른 기준 자체도 잘못되었겠지만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더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바로 시간이 지난 후 역사를 되짚을 근거, 시대정신, 사고방식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시대를 되짚을 힘' 자체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당신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이 질문 한 마디에 쉬이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정답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답안지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역사가 가진 의미'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 자신이 배운 사실을 토대로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정리하여 개인적인 역사관을 새우는 과정이 필요하기에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역사에 정답은 없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그 당시의 헤게모니를 쥔 승자의 세력이 기술한 자신들의 기록을, 후세사람들이 하나하나 비판적으로 되짚어가면서 지금 현재 가장 공정하고 정확하다고 생각되는 해석을 내놓는 것이 정답에 가장 가까워가는 방법이다. 그렇기에 역사는 다양하다. 정답이 없기에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해석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다양성을 포괄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핵심이다.
지난주, 아침 라디오의 국정교과서 토론회를 들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불편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여당측에서 말한 '편향성'은 다양성 자체를 부정한 인식에서 나온다. 그리고 '우리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에서 현 정권의 그늘이 확 다가왔다.
지금껏 3년간 국론분열을 유도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하나의 대한민국'을 외친 점이 아이러니했다. 조선왕조 500년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던 사관들. 그들이 지금 세대에 환생해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가 찰지 상상하기조차 부끄럽다. 역사 교과서 문제. 이는 단지 교과서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시대를 되짚을 힘' 자체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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