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의 사스 증언 2003년 사스 방역대응을 자세히 소개한 고건 전 총리의 증언. <중앙일보> 13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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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의료진 70명을 방역에 투입시켰다. 총리가 대국민담화를 했다. 범정부차원의 사스 정부종합상황실이 출범했다. 당시 1대뿐이던 열 감지기를 복지부 예비비로 10대를 구입해 공항에 배치했다. 착륙한 비행기에서 승객이 내리지 못하도록 한 뒤 직접 기내로 들어가 열 감지기로 체온을 쟀다. 곳곳을 다니면서 전쟁 치르듯이 방역 활동을 했다.
참여정부의 위와 같은 노력과 대응은 인상적이다. 이웃나라의 발병 소식을 듣고, 즉 예방적 차원에서 군 의료진을 투입하는 등 '전쟁 치르듯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2015년 6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환자가 속출하는 지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당시 기록을 보자. 방역 기간 동안 전국 242개 보건소가 사스 감염 위험지역 입국자 23만명에 대해 전화 추적조사를 벌였다. 항공기 5400여 대의 탑승객 62만여명, 선박 1만여 척의 탑승객 28만여 명 등 90만여 명에 대해 검역을 벌였다. 또 환자 접촉자 등 2200여 명이 자택격리됐으며, 1339 응급의료 상담전화를 통해 3300여 건의 사스 상담이 이뤄졌다.
민관이 합동으로 방역활동에 나선 결과 WHO(국제보건기구)로부터 사스 예방 모범국이란 평가를 받았다. 싱가포르도 사스에 뚫렸지만 한국에는 몇 명의 의심환자가 있었을 뿐 단 한 명의 확진 환자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2003년 7월 31일 사스 방역 평가보고회. 노 대통령은 인사말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은 8분인데 좀 넘었죠?" 연설 시작 후 21분이 넘어가던 때였다. 공무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노 대통령은 원고를 들어 보이며 "대체로 (원고를) 읽습니다. 현장에서 도저히 적어놓은 것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으면 저도 그 감동을 있는 대로 전하고 싶어서"라며 원고대로 읽지 않고 장시간 연설한 까닭을 설명했다.
확진 환자 발생 16일 만에 병원 방문한 박근혜, 사스 비교에는 불쾌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5일 메르스 환자 치료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했다. 첫 확진 환자가 나온 지 16일만의 방문이다. 메르스 확진 환자 및 격리 대상자가 급증하고, 서울 강남의 학교들이 휴교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뒤늦게 현장을 방문한 것이다. 이날 오전에는 <한국갤럽>이 박 대통령에 대한 정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지지여론이 지난 주 40%에서 34%로 급락했다. 메르스 영향 때문이었다.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메르스가 불치의 병이 아님을 강조한 뒤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민간 전문가들하고 함께 확산방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국민들께서 믿음을 가져달라"고 당부하며 "자가 격리된 분들이 외부와의 접촉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 협조를 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지난 2003년 유행했던 사스와 메르스가 다르다며 강조한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양상이 사스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메르스의 경우에 우리가 이전에 경험을 한 번도 못해봤던 감염병"이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참여정부의 사스 대처와 메르스 대처를 비교하는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이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했다.
박 대통령은 "사스 경우에는 중국이나 동남아에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질병 유입을 막아내는 것이었는데, 이번 메르스 경우는 내국인에 의해 질병이 유입된 후 의료기관 내 여러 접촉을 거쳐 감염이 계속되고 있다"며 거듭해서 차이점을 강조했다.
2003년 3월 17일 세계보건기구는 얼마 전부터 중국을 중심으로 폐렴 비슷하게 퍼지고 있던 괴질의 이름을 '사스'라고 명명했다. '괴질'이라는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스는 기존에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질병이었다. 중국, 홍콩 등 피해 사례가 시시각각 보도되던 때, 참여정부는 적극적 방역대책을 세워서 대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