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에서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미일동맹이 한층 더 격상됐다. 27일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자위대의 활동 범위에 대한 제한이 풀린 데 이어, 28일 아베 신조 총리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미국과 함께 대(對)중국 견제에 박차를 가하고 미국은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후원하게 됐다.
미국이 '전과자' 일본에 무슨 권한으로 그렇게 강력한 경찰권을 쥐어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세계 최강 미국은 자국의 세계 패권을 연장하겠다는 의도로 일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우리로서는 미일동맹의 격상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줄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과 미국이 국교를 맺은 1854년 이후의 160년 역사를 살펴보면, 두 나라의 관계가 단순히 두 나라에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라 제3자인 우리 한민족에게도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두 나라의 관계가 유별나게 좋아질 때마다 우리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나라의 동맹 격상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미일동맹 강화, 한민족에 부정적 영향 1854년에 일본은 동아시아 기지를 모색하는 미국에 시장을 개방했다. 이 해에 일본과 미국의 화친조약이 체결됐다. 이를 발판으로 미국은 조선을 개방 시키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미국의 요구를 단호히 외면했다. 이런 상태에서 1866년에 미국 선박 제너럴 셔먼호가 상선을 가장해서 평양 대동강에 침투했다. 그리고 훗날 개화파 선각자로 유명해질 평양감사 박규수가 관내 백성들과 함께 이 침략선을 격침시켜 버렸다.
그러자 1871년 미국은 보복 차원에서 '신미양요'라는 침략전쟁을 도발했다. 이때 미국 아시아함대는 일본 나가사키에 있다가 조선을 향해 출정했다. 미국이 일본 항구를 이용해서 조선을 침략한 것이다. 미일화친조약이 미국의 조선 침공에까지 도움이 된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제휴가 조선에 부정적 작용을 미쳤다.
유사한 현상은 1900년을 전후한 시점에도 일어났다. 미국은 1865년 남북전쟁 종결을 계기로 국민통합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어 1886년에 인디언들과의 전쟁을 사실상 마무리함으로써 미국 땅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됐다.
그러자 미국은 1890년대에 대대적인 태평양 공략에 나섰다. 미국 땅에 이어 태평양 섬들을 차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미국은 1898년에는 하와이·필리핀·괌을 강점하고 1899년에는 사모아·웨이크섬을 강점했다. 이로써 태평양 곳곳의 주요 거점을 확보하게 됐다. 미국 땅보다 훨씬 더 넓은 태평양 바다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1900년 전후의 미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새로 확보한 태평양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혼자의 힘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누군가의 협력이 필요했다. 그런 미국의 머리에 떠오른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