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출신 김태원'이 평양형무소 사형 집행 소식을 전하고 있는 <중외일보> 1926년 12월31일 자 보도. 앞서 1926년 12월 30일자 <조선일보>도 '김태원'의 사형집행 소식을 전하고 있다. 족보의 기록(평양감옥에서 사형됨)과 일치한다. 김해 김 씨 법흥파 시조인 김춘(金春)의 묘소또한 평북(룡천군 동상면)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규상
'김해 김씨 법흥파' 족보에는 1926년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한자 이름 '金泰源'(김태원)과 달리 '金泰元'(김태원)으로 돼 있다. 이는 실명과 족명을 다르게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85년 발행한 족보의 '독립운동가' 편에는 김태원이 '독립자금 조달차 국내에 잠입해 활동 중 체포당해 평양 감옥서 사형됨'으로 기록돼 있다. 평양 감옥에서 사형(1926년, 12월) 됐다는 '평북 김태원'의 행적과 일치한다. 2000년 발행한 족보에는 '독립자금 조달차 국내에 잠입해 활동 중 체포당해 평양감옥서 사형되었다고 하나 (사형 일시 등) 증명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고 썼다.
그가 사망한 지 89년 만에 '독립운동가 김태원, 1902~1926, 평북 의주군 의주면 서부동 출생'으로 복원된 셈이다. 그의 모친도 1926년 당시 <조선일보>와 <중외일보>가 보도한 것과 같이 '장씨'로 확인됐다. 당시 <조선일보>와 <중외일보>는 '평북 김태원'의 사형집행 소식과 함께 그의 친모를 인터뷰하면서 '장씨'라고 보도했다.
2000년 발행한 족보에는 '평북 김태원'의 모친이 1881년생 '인동 장씨'(이름은 나와 있지 않음)라고 기록돼 있다. 부친은 김대건(金大鍵, 1885년생)이다. 서훈을 받은 '대전 김태원'의 모친은 '남씨'다.
'평북 김태원'은 장남으로 결혼한 누나와 두 남동생이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두 남동생의 경우 각각 한 명의 여식을 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김태원의 자녀에 대한 기록은 족보에도 남아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실존인물인 '평북 김태원'이 '대전 김태원'과 같은 사람으로 둔갑한 배경에 의문이 쏠리고 있다.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보훈처가 자료 확인을 소홀히 해 생긴 오류일 수 있다. '대전 김태원'에게 서훈을 준 1963년은 독립운동가를 선정, 포상하던 초창기로 관련 업무 처리가 서툴렀을 수 있다.
'평북 김태원' 족보 기록 '삭제'되고 소실되고... 누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