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잠긴 김무성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남소연
'증세 없는 복지'. 애초 새누리당이 먼저 꺼내 든 카드였다. 2011년 8월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걸었던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결국 무상급식을 향한 민심을 받아들여 사퇴했다. 이후 10·26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체제로 재편한 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당명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경제 민주화와 증세 없는 복지 공약으로 이명박 정권과 차별성을 내보인 것도 새누리당이었다. 그 후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되었고, 새누리당 김무성 선대위원장은 당대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이 부르짖었던 경제민주화는 경제성장론에 눌렸고, 복지 공약도 증세 논의의 볼모로 잡힌 꼴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고, 여당 대표를 위시한 지도부는 과잉 복지론을 꺼내들었다. 모양새가 증세냐 복지 축소냐 선택하라는 것 같다.
증세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민들은 증세는 절대 안 된다고 고집한 적이 없었다. 아니,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의 의견은 아랑곳 없이 담뱃세 등 간접세는 무서운 추세로 인상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불었던 연말정산 논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법인세 감면액은 오히려 이명박 정권 때보다 늘어났다. 여당은 부자감세라는 이유로 국회에서 부결된 상속 증여세법 개정도 은근슬쩍 추진하려 하고 있다. 서민증세 부자감세 라는 엄연한 현실을 두고 '증세는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는 대통령과 여당의 모습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삼성 등 기업 세금은 3천억이나 깎아주면서...
복지를 볼모로 증세를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증세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조세의 형평성이다.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세수를 채우려는 꼼수가 거의 매일 발표되는 현실에서 복지를 위해선 어느 정도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김무성 대표는 이건희 손자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게 과잉 복지라고 말하기 전에, 법인세와 상속세만이라도 조세 형평에 맞게 징수되도록 해야 한다.
2013년 삼성을 위시한 10대 기업 법인세 감면액이 기업당 3191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3천억 원이 넘는 세금을 깎아 주면서 이건희 손자에게 주어지는 복지가 과잉이라니... 앞뒤가 맞는 말인지 스스로 되짚어 볼 일이다.
'증세 없이 선택적 복지' 주장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복지의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복지의 새판을 다시 짜야 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물론 허술하게 새고 있는 복지 예산이 있다면 새롭게 조정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증세에 찬성하지 않으니 복지를 축소하거나 선별 복지를 수용하라는 논리다.
김무성 대표는 과잉복지의 예로 그리스를 들었다. 국민들이 나태해지고 재정적자에 허덕이다보면 유로존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그리스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다. 그러나 그리스의 몰락은 복지의 과잉 탓이 아니다. 오히려 기득권 세력의 탈세와 양극화가 주요 원인이다. 수 천 억 원을 탕진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인들과 기업의 천문학적 규모의 탈세가 그리스 몰락을 불러왔다.
복지는 증세를 위한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선거가 있는 해에 정부가 제일 먼저 챙기는 일은 세금 징수원들을 거리에서 철수시키는 겁니다." "정직하게 계산하면 법인세가 1500만 유로에 달했지만 그 회사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단 한 푼도 말이다."미국의 경제 독설가 마이클 루이스가 그리스의 몰락을 진단한 저서 <부메랑>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리스 세무공무원과 대담 형식으로 서술된 글에서 복지의 과잉 탓이라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득권들은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 자산을 개인 재산처럼 탕진했다. 법인세 누락을 적발한 공무원을 오히려 징계를 받았다. 이는 수 천 억 손실을 입힌 자원외교에 눈감고 법인세 감면에 팔을 걷어붙인 박근혜 정부, 그리고 새누리당과 놀랄 정도로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