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김동환
"대학생 평균 월세가 42만 원이라잖아, 차라리 대출 받아 집사고 월세로 이자내면 더 럭셔리(luxury)한 삶이 되지 않을까? 대학·대학원까지 7년, 그때 집 팔면 되겠네. 이보다 남는 장사가 어디 있어."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친구와 요사이 부쩍 통화가 잦았다. 등록금은 그렇더라도 기숙사비, 용돈에 책값까지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다. 기숙사 생활은 1년 밖에 할 수 없어 2학년 때부터는 하숙이라도 해야 된다고 걱정하는 친구에게 농담으로 대출 제도 좋으니 집사라고 권했다. 그래, 정부의 말대로라면 집을 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최저금리가 7년 동안 유지되고,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하숙과 원룸을 전전하는 것보다 남는 장사일 수 있다.
그러나 국토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이번에도 틀렸다. 집값이 계속 올라야 유지될 수 있는 정책의 한계는 분명하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국민의 세금으로 은행 수익을 보전해 줘야하고, 집값이 오른다 하더라도 수혜자는 건설업자나 부동산 재벌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현명한 정권이라면 국민들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집값을 설계해야 한다. 9억 원짜리 아파트를 저리 대출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정권이라니... 부동산 정책을 대하는 철학부터 틀렸다.
이번에 내놓은 수익공유형 주택담보대출이 갖고 있는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지난해 수도권아파트 평균 거래 가격은 3억 원 남짓이다. 서울의 경우 4억5천만 원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 주택은 8840가구인데, 대부분이 강남에 몰려있다. 또 우리나라에서 1억 이상의 고액연봉자는 47만 명 정도다. 이런 고액연봉자가 1% 저리 대출을 이용하며, 서울 강남에 9억 원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게끔 하는 부동산 대책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어떤 효과를 기대하면서 만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산층 이상에 눈 돌린 정부, 서민은 안중에 없다이명박 정권은 임기 동안 부동산 대책을 22번이나 내놨다. 2008년 6·11 지방미분양대책부터 전세동향 및 안정대책부터 2012년 5월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와 다주택자 양도세 폐지를 내용으로 한 5·10대책까지 2~3개월에 한 번 꼴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저리 대출로 은행 문턱을 낮출 테니 집사라'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뒤이은 박근혜 정권도 같은 행보를 반복했다. 그동안 발표한 10여회에 이르는 부동산 대책의 근간은 역시 대출권유 집값 띄우기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보다 더 노골적이다. 박 대통령은 부동산시장의 회복이 소비와 내수를 살릴 것이라며 신년기자회견에서 집값 띄우기를 천명했고, 여당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장단을 맞췄다. 서민을 대상으로 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라'는 정책이 별 성과를 못 거두자, 아예 중산층이나 고액 자산가를 타깃으로 한 투자 상품을 내놓았다.
지난 13일 발표한 기업형 임대주택만 해도 그렇다. 서울의 경우 한 달 임대료만 70만~80만 원에 달해 관리비를 포함하면, 한 달에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지출해야 한다. 이번에 내놓은 수익공유형 주택담보대출도 서민들의 주거 안정보다는 중산층 이상이 부동산 투자에 반응할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다.
지난주 서울의 전세가격 상승률은 지난해 3월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전월세 시장의 불안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에 눈을 돌린 정부에게 서민들의 주거전쟁은 아예 관심 밖인가 보다.
서민 고통 가중시키는 정책, 안 하느니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