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10월 17일 광운대 최고경영자 과정 특강에서 이명박 후보 강연 내용을 담은 동영상 화면.
남소연
그 대답은 아마 이렇게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루빨리 자신의 치적이나 대통령 재임 당시의 활약상(?)을 기록하고 배포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설마, 3월로 예정된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위한 여론몰이로 이런 수준의 회고록을 하필 지금 출간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의 시간>엔 노 전 대통령 외에도 여러 인사가 등장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필두로 박정희 대통령, 오바마 미 대통령, 부시 전 대통령 등 국내외 유명 인사가 골고루, 제때에 출몰한다. 치적을 자랑하기에 고인이나 외국 정상만큼 용이한 대상이 또 있을까.
"이 후보께서 그렇게 공격을 받으면서도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참는 모습을 보며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 경우에 처했다면 나도 가만있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잘 참으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잘 해 나가실 것 같습니다."고 김수환 추기경이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 전 대통령에게 했다는 말이다. 이 덕담을 그 누가 확인해 줄 것인가. 그 밖에도 이 전 대통령은 는 부시 전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과의 일화도 아주 자세히 삽입했다. G8정상회담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이 자신을 "내 친구(my friend) 이명박 대통령입니다"라고 소개했다거나, 마지막 정상회담 직후 "이 대통령, 왜 이렇게 눈시울을 뜨겁게 만듭니까?"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는 그 표현과 수준에서 칭찬받으려는 초등학생을 보는 것 같아 얼핏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오마바 대통령과의 친분도 어김없이 과시한다).
반면, 재임 시절 과오에 대해서는 적당히 눙치거나 아예 언급조차 않는 식이다. 예상했겠지만, 민간인 사찰이나 용산참사, 언론 장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다. 한일관계를 악화일로로 몰아넣었던 2012년 독도 방문과 대일외교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땅인데 역대 대통령이 한 번도 못 갔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그래서 내가 다녀오겠다고 하는 거예요"라는 당시 참모진과의 대화와 함께 일본에 대한 '조용한 외교'가 의미가 없었다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킨다.
한국과 일본 언론은 물론 여타 외신에서도 질타했던 그 독도 방문이 하등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인 셈이다. 사실 정책적 판단은 각기 입장과 해석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시간>이 심각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4대강 문제와 같이 사후약방문식 주장과 기술이 난무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문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환경'과 '녹색성장'을 환기시키려 노력한다.
무려 서울시장 선거 전 샌프란시스코 부근 타호 호의 맑은 호수를 보며, "환경과 사람 중심으로 생각이 변해가면서 나는 문화와 환경 그리고 복지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됐다"는 식이다. 그리고는 22조 혈세낭비라 지탄받는 4대강 사업에 대해 "(2008년)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신속히 4대강 사업을 시행해 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며 "단기간에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일방적인 주장만을 늘어놓는다. 이 문장을 읽으며, 이 회고록마저 국민의 혈세가 들어갔다는 사실이 떠올랐을 때 전해지는 아득함이라니.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통일은 도둑같이 온다"며 남북정상회담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은 것을 자랑하고, 국부유출이라는 원성이 자자한 자원 외교는 영화를 방불케 하는 무용담과 함께 "일본과 미국, 프랑스 등 세계 3대 원전수출국을 제치고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을 수주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명박 전 대통령. 그가 밝힌 이 회고록의 원칙이야말로 이 책의 백미라 할 만하다.
퇴임 2년 만에 출간한 회고록... 박 대통령 참고용? "책을 쓰면서 이런 원칙을 갖고 있었다. '사실에 근거할 것, 솔직할 것, 그럼으로써 후대에 실질적인 참고가 될 것.' 이 회고록이 얼마나 이 원칙에 충실한 책이 되었는지는 독자들의 평가와 역사의 몫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책의 내용 중에 혹시라도 개인적으로 불편을 끼친 부분이 있다면 본의가 아니었음을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이번 회고록을 쓰면서 임기 5년간 겪었던 일을 모두 다 담을 수는 없었다. 특히 현실 정치와 대북관계 그리고 국제관계에 관련된 내용은 상당 부분 간추리거나 혹은 국익을 위해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회고록의 말미, 이명박 전 대통력은 이렇게 적었다. '사실'에 대해서도 외눈박이에 가깝고, 진짜 솔직해야 할 'BBK'와 같은 사건은 외면하며, 논란거리로 전락할 것이 분명한 이 회고록으로 어떻게, 누구에게 실질적인 참고가 될 거라 예상한 건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아, 언젠가 책을 쓸지 모를 후임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참고가 될 수 있을 듯하지만.
<대통령의 시간>은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그 출간 시기를 봤을 때 우리사회가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것 같다. 고작 퇴임한 지 2년 밖에 안 된 전임 대통령이 성찰이나 반성은커녕 치적만 늘어놓기 바쁜 회고록을 출간하는 시대. 검찰 조사도, 구속도 없었다는 이유가 퇴임 후 고작 2년여 만에 일방적이고 자기 합리화로 가득 찬 회고록을 출간할 논리가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대통령의 시간>의 기조에서 '승리자의 자기도취' 냄새가 물씬 난다는 점이다. 그가 혈세를 낭비한 탓에 온 국민이 세금 폭탄에 신음하고 있다. 또 방송과 언론은 '기레기'로 전락했으며 4대강 사업으로 모든 국토가 망가졌음에도 이를 반성하기보다 자신의 치적으로 외국에 알리겠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 그런데도 이런 내용을 담은 회고록을 내놓다니... 이미 상식을 벗어났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법치'를 좋아하셨던 분이었던 만큼, 대외적인 '범법'만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긴 "(자신을 공격한)'저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정말 알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지금도 전 국민 무상복지정책으로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복지 예산이 줄어드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다"는 인식을 여전히 가지고 계신 분에게 무슨 할 말이 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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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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