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청구 158억 철회' 등을 요구하며 2012년 12월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고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의 빈소가 있는 부산 영도 구민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
윤성효
우리 노동기본권과 현저히 다른 영국와 프랑스 노동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해외의 사례는 우리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 영국은 1906년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의 규율을 위한 법률(An Act to provide for the Regulation of Trade Unions and Trade Disputes)을 통해 노동조합에 대한 불법행위 소송을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하던 기존 법원 판결은 입법을 통해 금지되었다.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영국에서는 이미 100여년 전에 법률로 금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노동기본권의 현주소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1980년대 이후 영국도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책임 면책 범위가 상당 부분 줄어들기는 했다. 그러나 현재도 손해배상 책임재산을 일정하게 제한하거나 손해배상액의 상한을 제한함으로써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적절히 제한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손해배상액의 상한이란, 사용자가 쟁의행위를 이유로 노동조합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더라도 일정금액 이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존립과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설령 사용자가 그 이상의 손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손해배상 청구는 법정 상한을 넘어설 수 없다. 노동조합의 조합원 수에 따라 손해배상청구 상한액을 법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조합원수 5000명 미만의 경우 약 1740만 원, 5000명 이상 2만5000명 미만의 경우 약 8700만 원, 2만5000명 이상 10만 명 미만의 경우 약 2억1730만 원, 10만 명 이상의 약 4억3050만 원으로 상한을 설정하고 있다. 불과 조합원 수 몇 백명 규모의 단위 사업장에서 수백억 원을 청구하고 있는 우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프랑스는 파업이 헌법에 명시된 합법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업무방해죄와 같이 파업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파업은 합법행위이므로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이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단, 예외적으로 노동자가 파업권을 남용한(고의적인 기업조직의 파괴행위로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 경우와 순수한 의미의 정치 파업에 한해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손해배상이 인정된다. 정부의 경제정책 또는 사회정책에 저항하기 위한 경제적 정치파업(임금동결 거부, 근로시간 단축 등)은 직업적인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것으로서 합법적인 파업에 해당한다.
노동자 파업의 주된 이유인 근로조건 유지·개선뿐만 아니라 고용보장 등 노동자들의 집단적 직업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용자의 인사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이라도 쟁의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사용자로부터 특정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획득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도, 직업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사용자의 결정 내지 조치에 대한 반대하고 항의 또는 불만을 표출하는 파업도 허용된다.
우리 법원이 문제삼는 집단적 파업의 시기, 자발성 유무, 범위, 기간, 장소 등은 중요하지 않다. 조정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고 공공서비스 분야를 제외하고 사전통지를 할 필요도 없다. 우리 노조법은 노사 당사자가 합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도 '더 이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 여지가 없을 때'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쟁의행위를 함에 있어 교섭 결렬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최후수단의 원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권리행사자로서 노동자는 쟁의행위 실시 여부나 그 시기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영국, 프랑스에서 파업이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까다로운 조건 하에 제한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 파업은 '원래' 불법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남발되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은 법원이 쟁의행위 중 '정당한' 것만이 민사면책의 대상이 된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정당한' 쟁의행위의 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해석함으로써 노동자들이 합법 파업을 할 수 있는 길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회사 측의 막대한 손해배상, 법원의 법리 해석도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