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무상보육 예산 갈등에 난감한 새누리당내년도 누리과정 예산 편성 과정에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둘러싼 정파적 갈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 김태호 최고위원이 동료 의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유성호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이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돈 이야기 안 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좋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지금까지 확대되어온 초등학교, 중학교 무상교육의 수준을 유지한 채 이를 고등학교까지 확대한다는 의미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등학교 무상교육은 말도 안 꺼내고, 무상급식 예산을 줄여서 미취학 아동들의 보육예산(누리과정)으로 지원하겠다고 한다. 전형적인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아닌가? 그냥 안 주는 것보다 약속한 것을 안 주는 것이 상대를 더 화나게 만든다. 주겠다고 한 것을 안 주는 것보다 주었던 것을 빼앗는 것에 대한 저항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선택은 국민을 더욱 화나게 하는 역주행이다.
이전에 주어졌던 것이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거나 조금의 변화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무상급식이 만고불변의 법칙이 아니니, 불필요한 지원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모아지면 없어질 수도 있고 개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명백하게 도교육청의 권한인 급식업무에 대해 도청이 감사를 하겠다니... 이를 곱게 받아들일 교육감은 없다. 진보교육감에 비판적인 한국교총도 도청의 학교 감사에 반대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필요하다면 도청이 아니라 감사원의 감사를 받을 수 있다는 입장까지 밝혔지만 홍준표 지사는 "감사 없이 예산 없다"며 고집했고 급기야 무상급식 지원 중단을 발표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주민투표를 주장하고 나섰다가 서울시민들에게 퇴짜(투표율 미달)를 맞아 자리에서 물러난 후, 선거에 나선 그 누구도 무상급식 반대를 명시적으로 내건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반대로 무상급식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새누리당 후보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만약 무상급식이 아닌 무상보육이 자신들의 공약이었다면, 왜 박근혜 대통령은 무상보육 예산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 그것도 교육청에 떠맡기는가. 국민의 표가 필요할 때는 약속을 했다가 정작 책임은 시도교육감에게 떠맡기는 것은 정치적 도의에도 어긋난다.
정말로 무상보육 예산 때문에 무상급식 예산 지원이 어렵다면 국민들에게 사과 먼저 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양해를 구하고 설득을 할 때까지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뿐 아니라 시도교육감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공약은 중앙정부가 정작 실행은 지방정부의 예산으로 하라니, 이건 어불성설이다.
한정된 재원으로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가 국가의 재정 정책이다. 또 이만큼의 정책을 수행하는데 드는 재원을 어디에서 얼마만큼 확보할 것인가가 또 다른 재정 정책일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무상급식이냐 무상보육이냐의 논쟁은 일면만 반영한, 반쪽짜리 논쟁인 듯하다.
너무나 형편없는 대한민국의 아동복지 예산물론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라는 논쟁은 벌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리과정은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므로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맞는다는 점이다. 또 시도교육청은 유치원 단계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그러니까 초중등교육을 주로 책임지고 담당하는 곳이고, 영유아 보육은 보건복지부와 시도자치단체의 주된 업무다.
백보 양보하여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예산 논쟁을 하려면 이 두 가지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해야지,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이 모두 시도교육청의 당연한 책무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면서 논쟁을 유도하면 안 된다.
이 논쟁과 관련하여 우리가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은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 과연 양립불가능한 양자택일의 논제냐는 것이다. 지금 무상급식 논쟁이 이전투구처럼 진행되는 이유도 이 둘을 양자택일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정치적 시각 때문이다.
여기서 국제 통계를 몇 가지만 인용해 보자.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에서 복지 재정이 가장 적은 나라이다. GDP(국내 총생산) 중에서 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해보자. OECD 평균은 22%인데 우리는 9.3%로 절반도 안 된다.
아동복지 예산은 더 형편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3년 보고서 'OECD 국가와 한국의 아동가족복지지출 비교'에 의하면, 아동복지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8%로 OECD 평균 2.3%의 1/3에 불과하다. 34개 회원국 중 32위로 역시 꼴찌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OECD가 통계를 작성한 이래 공교육비 중 사교육부담률, 그러니까 공교육에 대한 국민의 개인적 지출 비중 부분에선 12년째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사교육비부담까지 더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1위임에 틀림없다.
물론 조세부담률이나 국민부담률 같은 수치도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 대단히 낮다. 즉,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저부담-저복지' 유형의 복지정책을 취하는 나라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복지수준, 특히 아동분야의 복지수준과 재정지출 수준은 분명 형편없이 낮은데도 청와대와 여당인 새누리당, 새누리당 소속의 시도지사들은 '아이들의 밥값지원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무상급식이냐, 무상보육이냐 토론의 선행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