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입주민과의 언쟁 끝에 유서를 남긴 뒤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발생했다. 10일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오전 9시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S아파트 단지에서 근무 중이던 경비원 이아무개씨(사진, 53)가 단지 내 노상주차장에 세워져있던 차량 안에서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동료제공
지난 11일 아침, 기분을 우울하게 만드는 뉴스를 보았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이었다. 현재 경찰이 정확한 분신 동기를 조사 중이지만, 그의 동료들은 입주민에게 들은 인격모독 발언에 좌절감을 많이 표현했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
'강남-아파트-경비원'이라는 단어의 연속에서 '분신자살'이라는 극한의 저항을 나타내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자니, 한국 자본주의가 만든 우울한 단면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의 진상 자체는 아직 더 조사해봐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서 우리나라 주거 문화 환경에서, 아니 전체적인 직업 문화에서 살펴봐도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가장 아래 위치하고 있을 아파트 경비원의 인권 문제에 대해 자성의 눈길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한 유가공업체 직원의 이른바 '갑질'이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인정사정없는 본사 직원의 행태에 대하여 분노했지만, 그 '갑질'이 '대한민국 사람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성찰은 부족했다. 그 업체 본사 직원이 '갑질'을 한 것은 맞지만,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또한 돈 몇 푼을 내는 '고객'이라는 이름으로, 너희 회사의 물건을 샀다는 이유 하나로, 삼성전자나 LG전자, 혹은 이동통신사의 사장에게 터뜨려야 할 불만을 일개 서비스센터 혹은 콜센터 직원에게 퍼붓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내 지갑에서 나간 알량한 돈 몇 푼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함부로 할 수 있는 권리와 내 기분을 맞춰야 할 권리까지 샀다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외국 학자 눈에 비친 한국 경비원, '저임금의 하인'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아파트에 거주한다. 내가 지불하는 관리비는 경비 아저씨의 월급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경비 아저씨에게 노동력을 샀을 뿐, 그의 인격을 사지는 않았다. '자유로운 노동'을 소유한 경비 아저씨에게 딱 그만큼의 서비스를 요구할 권리만 있을 뿐 그 이상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격을 산 일이 없기에 우리는 경비 아저씨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은 자선이 아니다. 내가 지불한 금액은 아저씨의 인격을 사기엔 그 값의 차이를 논할 수 없을 정도의 푼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격을 돈으로 산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우리나라 학자들보다 오히려 한국의 아파트를 학문적으로 잘 분석했다고 인정받고 있는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자신의 저서 <아파트 공화국>에서 아파트 경비원들을 '저임금의 하인'이라고 표현했다. 외국인의 눈에 그리 비쳤다니, 아파트 주민들이 평소에 경비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짐작이 갔다.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경비아저씨에게 내가 지불한 돈 이상의 과분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말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관리비가 비싸다고 말할지 몰라도 적어도 경비아저씨에게 받는 서비스의 질과 양을 생각하면 그것은 결코 비싼 금액이라고 볼 수 없다.
얼마 전에 경비 아저씨로부터 "밑에 집에서 애들이 뛰어서 시끄러우니 좀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우리 집은 1층이기에 그럴 일이 없는데 다른 집에 알려야할 것을 잘못 알린 것이었다. 그때 알았다. 경비 아저씨가 이웃 간에는 껄끄러워서 이야기 못 하는 것도 대신 말해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조용히 해달라"는 전화를 받은 이웃도 아랫집에겐 하지 못할 항변 또는 싫은 소리를 경비 아저씨에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엔 푼돈을 내고 상대방의 인격을 함부로 할 권리까지 산 줄 아는 사람이 많다. 이런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적 발상은 아파트 경비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감정노동을 하는 콜센터 직원은 말할 것도 없고, 대리기사나 청소일 등을 하는 노동자들도 인격에 상처를 받으며 낙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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