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없는 진상조사를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유가족들이 장기 단식농성중인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앞 농성장.
권우성
"'짐을 너무 많이 실으면 배가 위험하다. 더 실으면 배가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경고를 김 차장한테 수 차례 했다.""사고 전날인 지난 15일'그만 실어라. 배 가라앉는다'고 경고했다."
"세월호에 짐이 많이 실리니까 배의 균형을 잘 확인하라."
"세월호 선원들로부터 한번 출항하고 오면 배의 어느 부분이 고장 나 있지만 선사 측에서 잘 고쳐주지 않는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참사 한 달 전 조타기가 고장 났으니 고쳐달라고 두 번이나 청해진해운에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위의 내용은 지난 4월 말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세월호 침몰사고 조사 과정에서 언론에 공개한 승무원들의 진술과 관계자들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과적', '과승' 등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문제들에 대해, 선원을 비롯해 화물선적 관계자가 사고 발생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위험에 대한 경고와 함께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청해진해운에 수차례 요구했던 정황 또한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요구는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먼 청해진해운에 의해 가볍게 묵살됐고, 끔찍한 참사로 번졌다.
물론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의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는 본분을 다하지 않고 먼저 탈출한 것에 대한 책임이 사라질 수는 없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이토록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당장의 목숨줄인 밥줄(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출항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출항을 거부할 수 없었던 힘없는 '을'인 선원들과, 당장 몇 시간 후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모른 채 제주도 여행에 가슴 부풀었던 승객들이 '갑질'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한다.
과적 알았던 선원들, 세월호 출항 막을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에는 산업현장의 안전보건규제법으로 국가와 사업주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이 존재하고, 산안법 26조에는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담겨 있다.
산안법 제26조 제3항은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에는 같은법 제26조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노동자가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면 즉시 작업을 중지하고 현장을 떠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있음을 밝혀둔 것이다.
작업중지권이란? |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작업중지 등) ①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한 후 작업을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②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바로 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바로 위 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③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에는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고용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그 원인 규명 또는 예방대책 수립을 위하여 중대재해 발생 원인을 조사하고, 근로감독관과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보건진단이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할 수 있다. ⑤ 누구든지 중대재해 발생현장을 훼손하여 제4항의 원인조사를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
따라서 이 법이 지금처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아니었다면, 당시 위험을 인식한 누군가가(선장이든, 선원이든) 작업중지(작업거부)를 실시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화물이 너무 많아 가라앉을 위험이 있으니, 적재된 화물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그때까지 승선을 거부하겠다", "두 번씩이나 요구한 조타기 수리가 진행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출항할 수 없다. 조타기를 수리할 때까지 대기하겠다" 등 아무런 문제 없이 운항이 가능한 조건이 마련될 때까지 작업중지(작업거부)를 할 수 있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의 작업중지권은 산업현장에서 유명무실한 존재가 된 지 오래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세월호 참사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먹고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