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침몰사고 71일째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등교를 시작한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안산 세월호사고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남기고 간 편지, 간식, 국화꽃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희훈
그날 오전 아홉시쯤, 실시간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어떠한 물건도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없었다. 오후 네 시, 종례가 끝나고 휴대전화를 돌려받은 나는 습관적으로 인터넷 검색 앱을 띄웠다. 차례로 실시간 검색에어 오른 '진도 여객선'과 '안산 단원고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로 보이는 속보.
"진도 해상에서 여객선 침몰" 별 것 아닌 줄 알았다.
왜 그랬을까.
"야,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침몰했대." "헐, 대박." 왜 그랬을까.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오후에 헤드라인만 훑었던 기사들을 점 하나 빼먹지 않고 읽었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9>도 보았다.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침몰했대"와 "헐, 대박"으로 나타내기에는 상황은 아주 심각했다.
잠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눈앞에는 뉴스에서 본, 배가 침몰하는 모습이 떠다녔다. 배 안에 있는 이들의 마지막 시간을 떠올렸다. 내가 겨우 "점심 급식에 맛없는 메뉴가 나온다"는 이유로 투덜대던 시간에, 400명이 넘는 이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니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배에 탄 476명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325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와 같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성적에 치이고 입시에 치이며 숨 막히는 하루를 보내다, 겨우 한숨 돌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은 수학여행 가는 배에 올랐을 것이었다. 당연히 그들 중 누구도 그 배가 그들 생의 마지막이 되리란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찬 해수 속으로 가라앉으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공포에 발버둥 치다 마지막 숨을 뱉었을 그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어렸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이들을 향해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외쳤을 마지막 음성이 귀를 맴돌았다.
시험보고 소풍가고... 그래도 기억해야 할 건 잊지 않아오늘은 2014년 7월 1일이다. 사고가 나던 날 나는 봄가을 교복을 입고 있었다. 지금은 반팔 교복을 입고 에어컨 나오는 교실에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른다. 친구들하고 수다를 떨다가 그런 말이 나왔다.
"이제 그 뉴스 그만 보고 싶어. 우울해져. 슬픔을 강요당하는 기분이야." 놀라웠다. 어떻게 벌써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밤 아홉 시에 뉴스를 볼 때나 잠이 들기 전을 제외한 낮의 일상은 4월 16일 이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남들 다 안 그러는데 나만 유별나게 굴 필요 없지 않느냐는, 지극히 자기합리적인 논리와 야합한 결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요즘 낮의 생활은 밤의 사고를 따르지 못하고 있고, 그것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은 생각보다 크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코 작지 않은 괴리감에 따라붙는 허망함, 무력감, 죄책감 같은 것들을 비우기 위해서다. 언젠가 팽목항 제단 위에 놓인 축문의 한 구절, '오직 나를 위로하려 그대들을 위로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에서다.
바다 위의 일도, 바다 아래의 일도, 끝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사고가 나고 77일이 흘렀을 뿐이다. 그동안 293명의 시간이 멈추어 검은 테 둘린 사진이 되었다. 293명의 시간이 멈추는 동안에도 여전히 내 것은 살아 흘렀다. 그동안 나는 중간고사를 보았고 소풍을 갔다 왔으며 체육대회를 했다. 모의고사를 보았고, 며칠 남지 않은 기말고사에 스트레스 받고 있으면서도 여느 시험기간처럼 공부는 하지 않고 있다. 새벽 여섯 시 반에 일어나 학교에 가는 것은 여전히 하루하루 고역이며, 어떻게 하면 야간자율학습을 안 하고 집에 갈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도 여전하다.
사고 이후 우리는 충격에 빠졌다. 생존이 현실의 영역에서 기적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기던 순간부터 우리는 간절히 기적을 바랐다. 그 간절함은 슬픔이 되고 좌절이 되었다. 좌절은 곧 죄책감으로 바뀌었다가 분노가 되었다. 모든 희생자를 물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조차 기적으로 접어들 무렵에 분노는 절망으로 변모하여 우리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