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닦는 집회 참가자21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대회에서 시민들이 우의를 입고 손피켓을 들고 있다.
이희훈
'그날'로부터 49일째 되는 날이었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개별적으로 49재를 올렸고, 시신을 찾지 못해 49재조차 지낼 수 없는 실종자 가족들은 숨죽여 울어야 했다. 망자들의 눈물처럼 하루 종일 추적추적 제법 많은 비가 내렸고 곳곳에서 이들을 기억하며 추모제가 진행되었다. 나는 우리집 아이들을 통해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였다.
'그날' 이후 좀처럼 이전의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가 어렵다. 특히 단원고 학생들 또래의 자식을 둔 나로서는 '그날' 이후 한동안은 그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것만 보아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이들끼리 모여 장난치는 모습이나, 과장된 말이나 행동, 쉴 새 없이 깔깔거리며 웃어대는 모습도 그냥 예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없었다.
막내가 수업을 마치고 집안으로 들어오며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할 때엔 다시는 이런 인사를 할 수 없는 아이들 그리고 저 인사를 받으며 "학교에서 별 일 없었느냐"고 다시는 물어볼 수 없는 부모들이 떠올라 머리가 멍해지고 하얘졌다. 아이들이 어리광을 섞어 혀 짧은 소리로 과일을 달라고 할 때엔 나는 거의 단원고 엄마가 되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릴 아들을 볼 수 없구나. 들뜬 기분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딸애가 영영 저 현관문을 열고 돌아오지 못하는구나. 너는 무슨 연유로 열여덟 그 나이로 다시 엄마의 가슴 속으로 들어와야 했니... 나는 혼자서 묻고 또 물었다. 머리는 좀처럼 맑아지지 않았다. 정신을 근근이 붙잡고 이 미친 세상에 냉정하게 대응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 했다.
어떤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에나 '세월호'에서 조금 빗겨나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월호'는 내 일상의 중심에서 여전히 떠나지 않고 있다. 나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인의 죽음이 이토록 오랜 시간 나의 일상을 지배한 적이 있었던가.
오래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작년에 오빠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가족과의 사별은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그리움 그리고 살아 있을 때 조금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 같은 슬픔을 가져다 주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죽음과 부재는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고 슬픔 또한 차차 엷어지다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정작 남의 죽음 임에도, 시간이 지나도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어떤 구조활동도 펴지 못한 정부, 언론은 허위보도만세월호 참사가 남다르지 않게 다가오는 것이 어찌 나 뿐이겠는가. 국민들 대다수는 참사가 발생한 직후 며칠 동안은 경악과 공포 가운데 아이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생중계방송으로 봐야만 했다. 자고 일어나면 기적적인 생환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실날같은 희망을 갖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국가는 속수무책 어떠한 구조 활동도 하지 않음으로 응답했다. 언론은 권력의 시녀답게 정권이 하달한 거짓말을 사실인양 보도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다 세간의 원망어린 비판이 쏟아지고 사실을 은폐하려는 의혹 어린 정황들이 포착되자 박근혜 정권은 승객들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이유를 해경의 무능함으로 단정지어 버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전문적인 민간 잠수사들의 자원봉사를 가로 막고 첨단 장비들도 투입하지 않았던 그들은 무능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구조할 의도가 없었다. 그들은 구조하지 못한 게 아니라 구조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월호 안에서 아이들은 뭔가 위험한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실제로 배가 침몰하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서 만나자고 서로 토닥였다. 절대 이동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방송에 1시간 20여 분 동안이나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구조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국가는 조직적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데에 열중했다. 그러는 줄도 모르다가 배가 거의 침몰하고 객실까지 물이 차오르면서 출입문이 닫히고 꼼짝 없이 고립된 순간 아이들은 창문을 깨려고 안간 힘을 썼지만 저들은 전혀 그런 움직임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결국, 침몰 초기에 '자발적 판단'으로 선박을 탈출했던 사람들을 빼고는 단 한 명도 살아나오지 못했다.
이것이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발생된 단순사고인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인가? 아니면 갑작스럽게 당한 교통사고와 같은 것인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부끄럽게도 우리의 두 눈을 멀쩡하게 뜨고 산 목숨을 희생 제물로 삼아 수장 시키는 순간을 중계방송으로 보지 않았는가. 이것은 명명백백 학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의심하고 물을 수밖에 없다. 당시 세월호 운항에 은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엇이, 어떤 일이 있었는가? 무엇을 위해 산목숨들을 희생 제물로 삼는 극단의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이렇게 무고한 학생과 국민들이 이유도 모르는 채 학살을 당했는데 도저히 모른 척,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 수는 없다. 저 304명의 죽음이 과연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일까.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또 얼마나 큰 고통을 끌어안고 살고 있을까.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유인하며 민심을 흩어놓고 있고, 일부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얼렁뚱땅 마무리 지으려 한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내 자식들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이 저 차가운 바다에서 공포 속에 죽어갔다.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 연거푸 엄마를 찾으며, "엄마, 아빠,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마지막 인사를 보내왔다. 그 울먹이는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그 아이들을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산 채로 죽임을 당한 저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마지막 인사에 응답해야 한다. 우리가 밝혀냈다고. 그리고 응징했다고. 그러니 이제 편안하게 잠들어도 된다고. 죽을 때까지 너희들을 열여덟 예쁘고 건강한 아들 딸로 기억하고 사랑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