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과 논의 중인 장면.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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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이 배심원이 되어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로, 법조비리 및 전관예우 방지에 기여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 지난 2008년 도입되었다. 배심원으로 선정된 사람은 보통의 상식과 판단 능력으로 사건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이를 재판부에 권고하는 몫을 맡는다. 평결을 통해 모아진 배심원의 유무죄 의견은 재판부가 존중하여 판결에 반영하게 되어 있다.
형사재판 중 상당수의 성폭력 사건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고 있다. 거의 대부분 가해자 측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성폭력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으면 재판부가 이를 배제할 수 있는 근거조항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폭력피해자의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을 수 있는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을 재판부가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친부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피해자는 지적장애가 있는 아동으로, 국민참여재판이 피해자의 심리적 부담감을 가중시키고, 피해가 지역사회에 알려지는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유로 피해자를 지원한 성폭력상담소가 재판부에 국민참여재판 배제를 거듭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폭력피해자 진술 신빙성 의심, 무죄 평결 경우 많아2013년 3월 공개된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8.4%)은 일반 형사사건의 무죄율(3.3%)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때문에 이같은 무죄율에 주목한 성폭력 가해자 다수가 전략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성폭력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될 때 염려되는 것은 한국사회의 성폭력 통념에서 비롯된 가해자 중심의 관점이 고스란히 재판 결과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성폭력범죄의 수사·재판은 성폭력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과도하게 문제 삼아왔다.
2013년 초, 일간지를 통해 공개된 대검찰청의 '국민참여재판이 배심원 무죄 평결에 미치는 요인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도 성폭력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기 때문에 무죄를 평결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한 성폭력 피해자도 자신을 감금하고 강간하려는 가해자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지만, 폭행 정도에 대한 진술을 번복했다는 이유로, 배심원 전원은 가해자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성폭력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일관되고 분명하게 진술하는데도 상세한 상황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폭행 정도 등 일부 세부사항을 번복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평결하는 것은 세부사항을 혼동할 수도 있는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다.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피해자를 지나치게 의심하기 쉽다. 성폭력 범죄에서 재판부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결'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비난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배심원이 가진 '보통의 상식'이 선입견이나 편견, 통념일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재판부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결'이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시각, 가해자의 편에서 구성된 객관성이기 쉬운 것처럼 배심원이 가지는 '합리적 의심' 또한 가해자의 편에서 피해자를 의심하는 기존의 통념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요청이나 동의만을 구하는 국민참여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