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전 실종자 생존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바다를 바라모며 슬픔에 잠겨 있다.
권우성
앞선 이유들만으로 설명하기 부족한 우리들의 슬픔. 그렇다면 그것은 혹시 우리 모두가 세월호 침몰에 있어서 적지 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21년 전 중학교 3학년 당시 난 서해 훼리호의 침몰을 보면서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급격한 산업화로 앞만 보고 달려온 대한민국이 겪을 수밖에 없는 통과의례였으며,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과정을 생략해도 된다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의 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승객 정원보다 100명을 넘게 태워도 좋은 게 좋다고 생각했으니 예정된 사고일 수밖에.
그런데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지 21년이 지났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으며, 난 어느새 30대 중반의 성인이 되었다. 사회가 굴러가는 데 있어서 어쨌든 일부분의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그 동안 대한민국은 비록 IMF를 맞기도 했지만 어쨌든 21년 전과 비교하여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무역 규모는 세계 7위가 되었으며, IT강국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제 해외에 나가 코리아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볼 만큼은 되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사건은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착각임을 보여주었다. 세월호는 아직 우리가 21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언론은 이번 사건을 '후진국형 사고'라고 규정했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 어떤 면에서는 후진국에 가깝다.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정당화 시키고, 돈 때문에 사람 목숨도 가벼이 여기며,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수준 이하의 사회.
문제는 그와 같은 참담한 현실을 만드는 데 있어서 내가, 우리 모두가 일조했다는 사실이다. 직접적으로 나쁜 짓은 안 했어도, 그런 썩어빠진 현실을 바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영웅이 되는 사회를 받아들였으며, 그들이 만든 체제 안에서 무기력하게, 또는 타협해 가며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술잔만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원칙을 논하면 고지식하다고 손가락질 하고, 융통성이 없다며 팽 시키는 사회. 혹여 그런 사회를 바꾸고자 노력했더라도 죄책감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다. 그만큼 절박함이 없었기에 사회는 아직 이 모양 이 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세월호가 침몰하고 말았다. 21년 전 서해 훼리호와 너무도 똑같은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아무 죄가 없는 200여 명의 고등학생들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현재 많은 이들이 세월호의 침몰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씻기 힘든 죄책감과 부끄러움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참사 앞에서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청와대나 막말을 던지는 정치인들은 21년 전 똑같은 사고를 겪었어도 전혀 반성하지 않았던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생방송으로 대통령 지지율을 걱정하는 이들이 버젓이 언론인이라 칭해지는 시대, 우리는 그 시대를 만들어낸 공범이다.
세월호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람들은 모든지 잘 까먹는 국민성을 걱정하고 탓하지만, 그것은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결국 세월호를 잊느냐 마느냐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아무리 충격 상쇄용 기사를 개발하더라도, 사람들이 잊지 않는다면 사회는 그만큼 앞으로 나갈 것이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이 못난 어른들을 용서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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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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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전 '경고' 잊은 대한민국...그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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