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쓰오일 기름유출 사고 현장온산공단 에스오일공장 저장탱크에서 기름이 유출되어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
sbs방송사진
곪을 대로 곪은 상황이고, 어디에서 또 터질지 모른다는 뜻이다. 이번 사고도 믹서기의 무슨 이상이니 뭐니 기술적인 에러(error)들에 대한 분석 결과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사고를 일으킨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 현재 벌어지는 모든 사고들은 주민이 기업감시의 주체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주민들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말이다.
화학물질 정보를 요구하는 운동에 대한 기대최근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기업의 화학물질 정보가 지역사회에 더 투명하게 공개되고, 주민의 참여 속에 사고대응계획이 수립되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 요구다. 한 마디로 미국의 지역사회알권리법 같은 것을 만들자는 얘기다.
그런데 운동의 양상이 과거와 좀 다르다. 법개정 운동은 그동안 참 많이도 해왔는데, 이번엔 기대가 생긴다. 그 이유는 지역별로 기업을 감시하고 정보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를 결성했고, 온라인에서는 화학물질 정보공개 청구인단 모집이 시작되었다.
미국도 그랬다. 우리가 부러워마지 않는 지역사회알권리법이 제정된 것은 1986년. 인도 보팔에서 1984년 발생한 끔찍한 사고 때문에 미국에서 이 법이 제정된 것으로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보팔사고는 촉매였다. 1980년대 초반부터 약 5년간 전개된 주 별·도시 별 알권리 쟁취 운동이야말로 진짜 동력이었다.
1984년 보팔 사고는 출발이 아니었다 규제 완화를 전면에 내세운 레이건 정부에서 가장 강력한 환경규제가 제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자, 지금부터 30년 전 미국 얘기를 한 번 들어보자.
1984년 12월 인도 보팔시에 있는 유니온카바이드라는 농약공장에서 이소시안화메틸이라는 맹독성 가스가 누출되었다. 지구상에서 발생되었던 화학물질 사고 중에서 가장 끔찍한 사고였다. 사고 발생 이후 한 달 사이에 약 1만5000명이 사망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눈이 멀게 되었다. 전체 피해자는 5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고는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특히, 기업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이며 정부는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시민들이 깨닫게 만들었다. 지난 2012년 9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구미 불산누출사고가 준 충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미의회와 환경부는 기업의 화학물질 정보를 주민들에게 철저히 공개하는 '지역사회알권리 및 비상대응계획 수립에 관한 법률(아래 지역사회알권리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건 반쪽의 진실에 불과하다. 보팔 사고가 발생한 1984년 12월 이전에 이미 미국의 뉴저지주를 비롯한 열 개 이상의 주에 지역사회알권리법이나 조례가 제정되어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1974년에 약 4000명의 노동자가 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상해와 질병으로 산재를 당했다. 1984년 이 숫자는 약 8000명으로 두 배 증가한다. 노동자의 문제만 있었던 건 아니다. 특히, 소방관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위한 고민이 있었다. 1984년 캘리포니아에서는 1194건의 독성물질이 관련된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어떤 위협이 도사리는지 모르는 화재사고를 만나게 되면, 소방관들이나 응급대응팀은 시설이 전소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키거나 해야 했고, 자신들의 목숨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했다. 실제로 애너하임에서 발생한 화학공장 화재로 7500명의 인근 주민이 대피했는데, 이는 소방관이 어떤 재앙이 올지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관심도 증가했다. 1980년대 언론매체를 통해 각종 화학물질 사고 소식을 들으면서 대중들은 위험에 예민해져갔다. 캘리포니아 콘트라 코스트 카운티의 정유공장과 화학물질 제조공장 주변의 주민들은 이 시설들에서 생산, 저장, 사용, 폐기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만약 기업이 공개를 거부한다면, 그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지역사회 알권리의 불이 지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팔사고가 발생했다."(Black EG. California's Community Right-to-Know. Ecology Law Quarterly. 1989)즉, 기업의 화학물질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노동자와 소방관과 지역주민들에게 피해가 오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고, 정보를 요구하는 운동이 지역사회에서 전개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터와 레이건, 운동은 지역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