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김재연(가운데), 김선동(뒤) 의원이 17일 경기도 수원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내란음모죄 혐의로 법원의 선고를 앞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무죄를 촉구하는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희훈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멈추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다. 반드시 내란음모를 확정지어야만 하는 최고 수준의 정치적 압박을 가한 것이다. 선고 이전, 많은 이들이 재판 결과에 따라 박근혜 정권은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위기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바꿔 말하면, 박근혜 정부가 타격을 입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재판에 전방위적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원래부터 정치적 성격이 강한 공안사건의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결과를 쉽게 예측하지 못했던 이유는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과 검찰이 제시한 근거와 소위 내부 조력자의 증언의 신빙성이 너무 쉽게 반박되었기 때문이다. 내부 제보자도 이 사건이 세상에 공개될 시점에는 '내란 사건'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고,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가스, 통신, 전력 회사 임직원들도 5월 12일 강연 이후 국정원으로부터 시설 경비 강화 등을 위한 어떤 조치도,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국정원 조차, 5월 12일 즈음에는 이날의 발언이 실제 내란에 착수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지 않았다는 정황이다.
유죄를 향한 정치 환경은 무르익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법적 양심은 남아 있을 줄 알았다. <변호인>의 흥행과 33년만에 무죄를 받은 부림사건 피고인들, 1991년 정국을 들쑤셔놨던 강기훈 유서대필 혐의의 무죄판결이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검찰이 2004년 재심에서 무죄로 판결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법리를 들이밀 때에는 자충수다 싶었다. 최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관련해서는 국정원의 공문 조작 의혹도 일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반론을 모두 외면하고, 각종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는 국정원과 검찰만 전적으로 신뢰했다.
일각에서는 변호인단 재판 전략의 잘못을 지적하는 모양이지만 설득력 없는 이야기다. 내란 혐의의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다. 검찰은 재판과정에서 이 역할을 그다지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과거 유죄판결을 받은 내란 사건을 보라. 변호전략 때문에 유·무죄가 갈렸던가? 문제의 핵심은 정치를 하는 사법부였다. 사법의 정치화다. 사법과 권력의 카르텔이다.
통합진보당, 과연 내란을 꿈꾸었나?통합진보당은 정말 내란을 음모했는가? 어떤 저명한 진보논객은 이번 판결 이후, 통합진보당이 "비합혁명정당 노선을 추구하면서 그렇지 않은 척 나와 유권자들에게 표를 요구"했기 때문에 유권자를 기만했음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그것이 망상일지언정, 내란의 의도를 가진 것은 맞지 않으냐는 비아냥이다.
과연 그런가? 80~90년대에 걸쳐 매우 급진적인 목표를 추구하던 급진세력들은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이후 급격히 체제내화 되었다. 만일 이들이 내란을 통해 정권을 바꾸려는 의지를 고수하고 있었다면, 그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2008년의 촛불 정국은 절호의 기회였다.
그 당시 진보정당의 입장이 어떠했던가? 운동권과 전혀 상관없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퇴진'을 외칠 때, 비합법적인 반란을 준비했던가? 아니었다. 촛불정국 내내 이들의 주도권은 관철되지 않았고, 촛불시위가 내리막을 걸을 때도 비합법 변혁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범국민적인 저항의 물결 속에서 '선거 심판론'만 내세웠다. 선거연합, 후보단일화 협상에만 집중했다. 난무하는 급진적 구호와 실제 행동은 달랐다.
통합진보당의 창당도 유사한 맥락에 있다. 통합진보당의 창당은 비합법 변혁노선의 불가능성이 인식되면서 정치적 실리획득을 목표로 이질적인 세력들이 손을 잡은 결과다. 2012년 비례경선을 둘러싼 격렬한 내부 갈등 역시, 본질은 총선에서 실리분배 실패에 있었다.
이른바 '내란음모의 수괴'라는 이석기 의원의 등장도 마찬가지다. 만일 이석기 의원이 RO라는 혁명조직의 총책에 상응하는 위치에 있다면, 이석기 의원의 비례경선 출마 자체가 노선변화를 말해 준다. 호시탐탐 은밀한 내란을 준비하면서 단선연계, 복선포치 등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어떤 비밀혁명조직이 자신의 수뇌부를 선거에 출마시키고 대중 앞에 노출시키는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13년 5월 12일의 발언들도 내란을 위한 실제적 음모였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경선 부정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분당을 전후한 대대적인 공세, 진보진영으로부터의 고립,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와의 날 선 대립 이후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다각도의 사법처리 시도 등 일련의 위기가 가중되는 조건에서 악화된 2013년 한반도 정세가 만들어낸 '위기의식'의 표출이었다.
녹취록을 선입견 없이 본다면, 그 곳에서 오고 간 말들은 내란을 실행하기 위한 공세적인 자신감의 표출이 아니라 극도의 위기감에서 나오는 수세적 반응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어렵지 않다. 몇몇 자극적인 말들도 있지만, 이는 항상 외부의 위협을 과잉 극단화하고, 내적 결기를 최대화하는 그들 특유의 생존방식일 뿐이다. 비합법적 봉기로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이처럼 '구호'로만, '말'로만 존재했을 뿐, 실체가 없었다.
기준선 낮아진 내란, 칼자루 쥔 공안당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