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2000년초까지만해도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고실업, 재정악화 등으로 '유럽의 병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10년새 경제개혁과 함께 꾸준한 교육과 연구개발 등 미래에 대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이어 메르켈 총리의 대화와설득의 리더십과 더해지면서 유럽의 강자로 떠올랐다. 사진은 유럽 금융경제의 중심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시 전경.
김종철
아시다시피 독일은 우리와 너무나도 닮은 역사적 경제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분단을 경험했고, 남북한이 통일할 경우 인구수와 면적 또한 엇비슷합니다. 경제 구조를 살펴보면, 기계, 자동차, 화학 등 소위 '에너지 다소비형' 제조업에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전체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나라가 28.1%, 독일은 21%입니다. 수출 지향적인 전략을 갖고 있는 것 또한 같습니다. 두 나라 모두 전체 GDP의 절반 이상을 수출을 통해 만들고 있습니다(2012년 기준 한국 57%, 독일 51%).
여기에 더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에너지 자원 절대 빈국인 것처럼, 독일 또한 자원 빈국이라는 사실입니다. 2차대전 후 '라인강의 기적'의 밑거름이 되었던 갈탄 자원이 아직도 독일에 많이 남아 있긴 합니다. 그러나 높은 인건비 때문에 자국산 갈탄을 채굴해 사용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것이 더 저렴하거니와 점차 가중되는 국제적인 온실가스 규제 압박으로 석탄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입니다. 독일 영토에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이 갈탄인데, 이래저래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인 거죠.
이런 형편으로 독일은 2012년 현재 전체 에너지의 70%를 수입해야만 했습니다. 같은 시기, 우리는 전체 에너지의 96.4%를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한여름 무더위로 냉방기 이용이 많아지는 데 반해 독일은 겨울철 난방이 큰 골칫거리입니다. 혹독한 추위는 없습니다만, 겨울이 길고 습한 이곳에서는 4개월 이상을 어떻게든 난방을 해야만 별 탈 없이 이 어두침침한 계절을 날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독일서 생활하신 간호사·광부 어르신들은 '독일의 겨울 날씨는 뼈를 쑤시게 만드는 고약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집안에 습기를 제거하고 실내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지요.
메르켈이 정치적 수치 감내한 이유즉, 한국이 겪고 있고 또 고민하고 있는 에너지 위기 상황을 독일 또한 그대로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두 나라의 에너지 대책은 전혀 상반된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1986년 구 소련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독일인들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과 후쿠시마의 거리와 똑같은, 체르노빌로부터 약 1000km 떨어진 독일은 체르노빌 방사능 낙진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고 직후부터 전국적으로 갑상선 암 발병이 증가했고, 9개월 이후부터는 베를린에서 다운증후군 신생아 출생이 급증했습니다. 사고가 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알프스 북쪽 자락인 바이에른 지방의 야산에 사는 멧돼지에게는 유럽연합 기준치의 수십 배가 넘는 방사능 세슘이 검출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