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해 지난 11일 항소심 재판부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김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자유로워진 날, 2000억 원대 사기성 기업 어음을 발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구자원 LIG 회장도 자유로워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구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대기업 임원이나 대형 경제사범들의 면죄부로 사용되던 3.5법칙(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이 되살아나는 모양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법원은 다음 날인 1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씨에게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에겐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27억 원의 조세포탈을 한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세법지식이 없어서 발생했다는 점 ▲포탈 세액의 절반을 납부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세법을 몰라서 세금 27억 원을 포탈했다는 점도 수긍할 수 없을 뿐더러, 포탈 세금의 절반을 납부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점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틀 동안 벌어진 대기업 회장과 과거 정치권력에 대한 판결을 두고, 많은 언론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이 부활했다고 성토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두고 '유권무죄 무권유죄'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실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의 유죄를 무죄로 만들어준 이번 사법부의 어이없는 판결은 새삼스러울 것도, 그리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개탄스러운 것은 불과 몇 년 만에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법원이다. 정의보다는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가 우선인 걸까.
사법부의 입장에서야 펄쩍 뛸 말이지만, 경영 공백·경제발전 기여 공로를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지 않겠다는 1심 재판 결과를 정면으로 뒤집은 이번 판결은 정치권력과 코드 맞추기라는 의심을 사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막다른 골목'과 같았던,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명박 정부는 '경제살리기'란 명분으로 집권 첫해인 2008년 8월 15일 34만명을 광복절 특사로 사면했다. 여기에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최태원 SK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이 포함돼 있었다. 2009년 12월 31일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명분으로 삼성 이건희 회장을 단독으로 사면했다. 이명박 정권은 재판에서 감형되고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사건조차 경제살리기란 명분으로 사면을 단행했다. 그러나 사면을 받은 총수들은 경제를 살리기보다 탈법, 불법으로 몸집 불리기에 치중했다.
그들은 계열사 주식을 헐값에 가족들에게 매각하여 소액주주들을 빈털터리로 만들면서 지배구조를 다지고 세금도 내지 않고 부를 대물림했다. 부도 직전인 회사가 어음을 발행하여 돈을 만들어 빼돌렸다. 기업이 잘되어야 서민들도 잘 살 수 있다며 낙수 효과를 이야기했던 이명박 정권. 그러나 '기업 살리기 정책'은 대기업과 총수 일가의 '탐욕의 빨대'를 서민들이 꽂아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기업이 거대해질수록 서민들의 생활은 더 궁핍해 질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 이명박 정권의 경제 정책은 '막다른 골목'과 같았다.
2012년, 재벌 규제와 경제민주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집권을 꿈꾸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재빠르게 '경제민주화'를 주창하며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를 꾀했다. 이에 사법부는 국민들의 요구에 떠밀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일가를 향해 사정의 칼날을 겨누었다. 그러나 집권 1년도 되지 않아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흐지부지됐다. 또 더 이상 경제 발전 기여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지 않겠다는 사법부의 장담은 1년 6개월 만에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줄줄이 이어질 기업 총수들 재판, 사법부에 바라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