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자령, 자작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걷고 있는 등산객들.
성낙선
아무리 산을 잘 타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한겨울에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 위를 걷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녹은 눈이 다져져 빙판처럼 매끄러워진 산길을 걷는 일은 그보다 더 힘들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 힘든 산길을 줄을 지어 걸어 오른다. 살을 에는 것 같은 추운 날씨를 마다하지 않고, 사람들이 떼를 지어 눈 덮인 겨울 산을 걸어 오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한창 눈이 퍼부을 때, 겨울 산에서 산등성이를 온통 하얗게 뒤덮어버린 눈꽃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감동적인 것도 없다. 그런 광경을 접하면, 누구나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기 마련이다. 한겨울에 눈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다. 그런 곳들 가운데 강원도에서는 대관령과 선자령을 오가는 '선자령 풍차길'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선자령 풍차길은 풍차를 배경으로 풍성하게 피어오른 눈꽃이 유독 아름다운 곳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대관령과 선자령 사이를 오르내리는 이 길은 또 얼어붙은 두 뺨을 후려치는 매서운 칼바람으로도 유명하다. 선자령 능선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대부분 나뭇가지들이 한쪽으로 치우쳐 자라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골짜기를 타고 올라오는 골바람이 나무들의 성장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탓이다.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불어대는지 때로 산길을 걷는 고통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그 바람이 평소 까맣게 잊고 지내던 생존 본능까지 일깨워준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대관령 일대는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눈이 내린다. 매년 눈이 내리는 날만 60일 가까이 된다.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 중에 하나다. 바람이 거칠기로는 대관령을 따라올 곳이 없다.
사람들이 이런 악조건을 무릅쓰고 이 길을 걷는 이유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 때문이다. 선자령 풍차길은 산 정상에서 거대한 풍력발전기와 푸른 바다를 함께 바라다볼 수 있는 묘미 때문에 사시사철 여행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선자령 부근에서 보는 풍력발전기는 모두 44기다. 총 발전량은 98Mw다. 국내 최대 규모로, 국내에서 생산하는 풍력 발전의 78%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 이처럼 많은 풍력발전기들이 들어설 수 있었던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나무들의 키가 점점 더 낮아지는 걸 볼 수 있다. 정상 부근에는 대부분 바람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 키 작은 관목들만 자라고 있다. 선자령 풍차길은 강릉바우길의 일부분으로, 그 길이 시작되는 첫 번째 구간에 해당한다. 강릉바우길은 강릉시를 대표하는 도보여행길이다.
산을 넘는 세찬 칼바람...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유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