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이벤트MC의 모습행사를 만족스러운 분위기로 이끄는게 사회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곽연범
한 업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야구경기를 보기 전 OO경기장에서 장애인 학우들을 대상으로 레크리에이션을 1~2시간가량 진행해 달라"며 '세부 진행프로그램'을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원래 사회자 섭외는 프로필이나 진행 영상 정도만 확인하고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세부 진행프로그램은 사회자가 확정된 상태에서만 보내드릴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걸 보내줘야 확정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을의 의견이 쉽사리 통할 리가 없다. 업체의 요청대로 그날 밤 자정까지 행사에 대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짜서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들도 대행 업체라는 걸 알았다. 전반적인 기획과 MC 프로그램을 만든 후, 행사 주최 측에 제안서를 넣고 결정되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섭외 요청할 때만 해도 100% 거의 확실하다는 식으로 말하더니….
이처럼 대다수 업체가 행사기획·진행에 필요한 MC를 사전에 섭외만 해두고 진행 확정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된다는 식으로 여긴다. 그러나 대개 행사 계약은 구두로 진행되는 만큼 일방적인 행사 취소 통보를 당할지언정 사회자가 보상받을 만한 근거는 미비한 상태다.
돌잔치 사회를 보는 경우엔 괜한 텃새로 마음이 상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돌잔치를 준비하는 엄마들은 몇 달 전부터 장소 섭외에 골머리를 앓는다. 일단 장소가 정해지면, 예약 담당자로부터 돌상 패키지(돌상/포토테이블/성장동영상/빔프로젝트/사회자 묶음서비스)라는 서비스를 권유 받는다.
이때 자신만의 특별한 돌잔치를 준비하고 싶은 엄마아빠들은 직접 돌상·포토테이블을 준비하고 나같은 프리랜서 사회자를 따로 섭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은근히 많은 업체들이 텃새를 부리곤 한다.
올해 초 나에게 사회를 부탁한 엄마아빠가 돌잔치를 얼마 남기지 않고 장소 측에서 고용한 사회자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음향시설(앰프·마이크) 일체를 제공할 수 없다고 통보받았다고 알려왔다. 덕분에 울며 겨자먹기로 급하게 음향기기까지 대여를 하게 됐는데, 대여비를 누군가에게 전가 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참으로 답답했다(원래, 음향기기를 사회자가 준비하면 별도의 금액이 추가된다). 외부 사회자라도 실력있는 서비스를 보인다면, 잠재고객들이 더 많은 예약을 할텐데, 그건 생각하지 못하고 연결된 업체를 통해 수수료만 챙기려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기업 행사는 나름 원하는 형식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정해진 내용 그대로 하길 원한다. 어떨 때는 대사 한 마디라도 틀려지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행사기획 담당자가 사회자 바로 옆에서 멘트를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글이 아닌 말로 전달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행사의 흐름이 뚝뚝 끊기는 건 물론이거니와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말을 내뱉어 실수가 생길 위험이 크다. 약간의 실수라도 매끄럽지 않은 진행을 한 것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오롯이 사회자의 몫이다.
마이크도 안 잡았는데... "어린 사람이 무슨 사회를... 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