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 (돌베개)
돌베개
책을 쓴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스스로도 "이 책은 내가 든 나의 촛불"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통령과 장관들,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대중의 비이성적 감정과 충동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행위를 그만두"도록 하기 위해 치켜든 촛불. 맞다. 한때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렸던 유시민은 아마도 죽어서까지 '대통령과 장관들, 정치인과 지식인들에게' 호된 뭇매를 맞는 노 전 대통령을 지키려 촛불을 드는 심정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은 의도적인 거짓말이거나 감정과 충동으로 인한 난독증의 표현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지켰다. 그러나 그냥 지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NLL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서해상의 군사충돌을 예방하고 남북 모두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포괄적이고 강력한 대안을 만들어 북의 동의를 받아냈다. 이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그는 268쪽에 달하는 이 책을 통해 남북의 두 정상이 마주 앉아 나눈 246분의 대화에 담긴 의미를 온전히 전하려 애썼다. 그는 "모두들 대화록에 'NLL 포기 발언'이 있는지 여부만 살폈다"고 꼬집으며 "국가 정상들의 회담 기록을 이렇게 다루는 것은 너무나 유치하고 부박한 행위"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자주(自主)를 둘러싼 두 정상의 '논쟁'을 대화의 백미로 꼽았다. "남북 정상이 가장 긴 시간을 들여 토론한 주제"도 바로 그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긴 시간을 들여 자주가 무엇이며 어떻게 자주를 이루어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대화록에 적힌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겉보기에는 해명 같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주장이었다. 때로는 강의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뭐라고 하든, 중요한 사실은 김정일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논리를 수긍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을 받아들인 그 반전의 순간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전체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때부터 꽉 막혀 있었던 회담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오후 회담을 열기로 했으며, 오후에는 「10.4공동선언」에 담을 내용을 일사천리로 합의했다."이처럼 그는 우리들이 남북의 두 정상이 나눈 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더불어 앞으로 다시 없을지 모를, 아니 다시 있다 해도 다시 볼 수는 없을 남북 정상 간의 대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려주려 했다.
"그 회담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둘이서만 한 것이 아니었다. 대화록에는 비록 직접 만나지는 않았으나 참모들을 통해 진지한 대화를 주고받았고 중요한 합의문을 만들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 김일성 주석의 고뇌와 꿈이 깔려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비전이 들어있다. 분단의 골짜기를 넘고 대결의 불구덩이를 건너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찾아 나섰던 그들의 용기와 의지가 묻어 있다. 대화록 갈피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나누었던 번민과 분노, 기대와 희망, 비전과 전략, 분노와 열정이 비친다."그러면서 그는 "이래도 되는 것일까. 그 대화록을 이토록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괜찮을 것일까?"라며 우리에게 묻는다. 어쩌면 긴 대화록을 몇 번이고 읽었을 그가 정말로 우리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일지 모른다.
촛불을 드는 심정으로 읽어야 할 책검찰이 대화록 초본 삭제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 국정원본 대화록이 조작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NLL 포기 발언'을 비롯해 문제가 되는 표현들을 노 전 대통령이 고치거나 지웠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정문헌 의원이 정치생명을 걸어가면서까지 세상에 알려야 할 만큼 불온하게 여겼던 대화록도, 또 김무성 의원이 지난 대선 때 부산시민들 앞에서 울먹거리며 읽었다던 대화록도 모두 국정원본이니 말이다. 이른바 '사초 폐기' 의혹을 무시해도 되는 이유다.
이제 얼마 후면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이다. 검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예측하긴 어렵다. 또 그것으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모든 의혹이 말끔히 사라질지도 알 수 없다. 아마도 그저 기억에 기대 '그럴 리 없다'는 말을 되뇔 수밖에 없는 이들에겐 두고두고 곤혹스런 일로 남을 것이다.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우리들 모두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끝모를 소란을 넘어서려면 아슬아슬한 갈등의 경계를 평화로운 공존의 공간으로 메우려던 노 전 대통령의 지혜가 필요하다. 몇몇 '발언'이 아니라 '대화' 전체를 보는 지혜. 그래서 부디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다시 못 볼 대화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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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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