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작나무 밑동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여행객.
성낙선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자작나무숲에 왜 하필이면 '속삭이는'이라는 수식어를 가져다 붙였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이 자작나무숲을 찾아가 보면 알 수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가 마치 나무들이 허공중에서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나무도 나무지만, 그 소리도 어딘가 모르게 예사롭지 않은 구석이 있는 것이다.
강원도에는 자작나무숲이 여러 군데 있다. 인제, 횡성, 홍천, 태백 등에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그중에 한 곳이, 이곳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다. 이 숲은 다른 군락지에 비해 비교적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자작나무 밀집도도 꽤 높은 편이다. 수령이 30년에서 50년 가까이 되는 자작나무가 90만 그루 이상 자라고 있다. 숲 속에 빽빽이 꽂혀 있는 자작나무들이 장관이다. 나무 끝은 왜 또 그렇게 높은지 고개를 쳐들고 올려다봐야만 한다.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은 단풍이 어느새 절정을 넘어섰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그 소리가 마치 바닷가 백사장을 쓸고 지나가는 파도 소리 같다. 노란색 단풍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면서, 숲은 점점 더 빠르게 조락의 계절을 맞고 있다. 그나마 옅은 색을 띤 단풍이 더욱 더 옅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자작나무 숲만이 가지고 있는 은은한 단풍 빛은 여전히 살아 있다.
자작나무 단풍잎은 같은 노란색인데도 은행나무 잎보다는 좀 더 옅은 빛을 띠고 있다. 그래서 자작나무 단풍은 멀리서 보면, 산자락에 마치 수채화를 그리려는 생각으로 여기 저기 살짝살짝 붓질을 해놓은 것 같이 보인다. 침엽수림이 여전히 푸른 상태로 남아 있거나, 다른 활엽수들이 짙은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작나무는 가을날에 잎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것에서마저 '독존'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