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회담 마친 박근혜-황우여-김한길박근혜 대통령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9월 16일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3자회담을 마친 뒤 나란히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이희훈
- 최근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 '3자회담'을 지켜본 소감이 궁금하다."'3자회담'이라고 하니 뭔가 근사해 보이지만, 정치권 현안 문제를 두고 서로 토론해 해결책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다. '3자회담'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결코 역사적 명명이 될 수 없다. 여야 간, 또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현안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하도 그런 자리가 없다보니 마치 옛날 미국-소련 정상회담이나 남북 정상회담처럼 이름을 붙인 거다. 어쨌든 이번 회담에서 박근혜 정권의 행태가 우려했던 대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에겐 통치나 지시는 있되, 정치는 없다는 게 이번 만남으로 확인됐다."
"유신 부활... 가장 적절한 표현"- 우려했던 대로라면..."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많은 이들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느니 차라리 이명박이 낫다고 생각했다. 즉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박근혜'는 한국 사회 보수세력이 언젠가는 한 번 써먹을 카드였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산이라면 차라리 2007년에 넘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지난 5년의 시간을 덤으로 손해봤다. 박근혜 피하려다 '이명박 시대'라는 엉뚱한 시기를 보냈다. 둘째, 그때(2007년 당시)였다면 아무리 박근혜라도 지금처럼 무지막지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 시대'라는 완충 시간이 없었다면 민주정부 1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이룬 성과를 하루아침에 뒤집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전제 조건을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줬다. 마치 박정희의 쿠데타에서 시작해, 3선 개헌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유신체제가 만들어진 것처럼."
- 야권 등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태를 두고 유신 부활이라고 말한다. 이런 평가에 대해 역사학자로서 동의하나"'유신 부활'만큼 현재를 적절히 표현하는 말은 없다. 사람들이 자기 느낌을 표현한 것인데, 역사적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닮았나."긴급조치나 계엄령을 발동해서 유신체제라는 게 아니다. 최고 지도자 의지 하나만 갖고 (국정을) 밀어붙이는 건 예전과 비슷하다.
또 지난 번에 박 대통령이 김한길 민주당 대표를 만나 '(황교안 법무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권 행사는 진실을 밝히자는 차원에서 잘한 일'이라고 했다. 바로 '잘한 일'이라는 표현이 박 대통령의 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통상 윗사람이 '잘한 일'이라고 할 때는 아랫사람의 행동을 격려하고 두둔할 때다. 본인의 의지, 감정을 담아 두둔하거나, 또는 자기가 시킨 일이었을 때 그런 표현을 쓴다.
또 민주당을 향해 '장외투쟁을 고집하면서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도 했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민주화 세력과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해서 수없이 써먹은 이야기가 바로 '국민적 저항'이다. 위정자들이 국민을 탄압하거나 억압했을 때 그런 말을 쓴다. 설령 야당이 터무니 없는 억지를 부려 국민이 정부 편을 들어도 그걸 '국민적 저항'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두 용어로 봤을 때, 박 대통령은 국민을 '민주사회의 시민'으로 보기보다는 맹목적으로 자신을 추종해야 하는 '신민'으로 보는 듯하다. 아랫사람들의 정치 행위 전부를 오로지 자신의 지시와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는 거다. 마피아 보스가 부하들을 거느릴 때와 비슷한 모습이다."
-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여전히 60% 수준으로 높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부터 여론조사가 정치에 적극 개입했는데, 나는 이런 현상이 불편하다. 여론조사가 외형적으로는 공정성, 과학성, 합리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여러 여론조사기관이 경쟁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을 정확하게 끌어내지 못하고 단기적 영업 성과에 휘둘리는 측면이 있다. 시류에 휩쓸리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이것이 다시 국민 여론을 호도하는 측면이 강하다.
보수 언론만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설정한 의제에 끌려 갈 수밖에 없다. 100번이면 100번 물어봐도 비슷한 답변만 나온다. 그런 기계적인 통계를 내세워 마치 국민의 뜻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오류이자 왜곡이다. 여론조사 결과로 정책 정당성을 따지는 것도 옳지 않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도 여론조사를 하면 80% 정도가 '정부를 지지한다'고 답했을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를 어떻게 보나."대통령이라면 5000만 국민 가운데 가장 적절한 사람을 불러다 써야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그런 개념을 찾을 수 없다. 모든 인사의 선택 기준은 자기와의 친소관계, 개인적 감성 관계 여부이다. 그런 식의 인사는 최고 권력자의 권력에 정당성이 결여됐을 때나 하는 거다. 마피아 보스는 떳떳치 못한 일, 정당하지 않은 일, 무리한 일을 해야할 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보스의 명령에 절대충성을 바칠 사람을 뽑아 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도 그와 다르지 않다.
박 대통령이 이른바 7인회 멤버, 즉 형제를 빼고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김기춘을 기용한 건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현 정부가 집권 6개월 만에 최악의 궁지에 몰렸다고 판단해 '히든카드'를 뽑았거나, 박 대통령에겐 처음부터 정치가 공적인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저 가족 사업 정도로 국가 경영을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