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공무원이 선거에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명백하게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다. 더욱이 국가 정보기관이 개입됐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국격을 훼손한 중대한 사건이다. 그런데 청와대와 여권이 드러내고 있는 작금의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장외투쟁과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대선 불복의 정치공세'로 싸잡아 치부하고 있고, 가장 큰 수혜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보다 못해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시국선언은 시민사회단체, 학계, 종교계, 문인, 일반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음에도 대통령은 "도움을 받지 않았다"며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 분노한 시민들의 함성을 향해 "2008년 대선에 불복해 촛불집회를 일으켜 나라를 어지럽힌 전례가 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방패막이를 해주는 여당과 보수언론들이 있으니 굳이 대통령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나홀로 인사', '수첩 인사' 등 불안한 박근혜표 리더십은 취임 6개월이 지난 지금, 참담한 결과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합리적 보수주의와 젊고 유능한 인사들이 퇴조하는 대신, 대통령 주변엔 군인출신, 공안통 검사출신, 심지어 유신시절 사람들까지 포진하여 아버지 '박정희 독재'를 닮아가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고 있다.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하고 "우리가 남이가" 등의 망언으로 지역감정의 대명사격으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 임명은 '나홀로 정치'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로 말미암아 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을 맞은 우리사회는 빛보다 그림자가 넓고 짙게 드리워지고 있는 형국이다.
오죽했으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두고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기친람'이라고 꼬집어 비유했다. '모든 일을 직접 챙긴다' 뜻으로 적극적인 소통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말이다. 갈수록 더해가는 불통, 오만, 독선으로 뒤엉킨 1인 리더십은 정부 부처와 여당이 전문성·소신을 갖고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저해하고 대국민 설득·소통에서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창조경제를 강조했지만 6개월 동안 경제분야의 별다른 성과를 찾아보기 힘들다. 박근혜 정부는 4대 국정기조 첫번째 과제로 '경제 부흥'을 설정해 추경편성과 4·1부동산 대책,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 투자활성화 대책 등을 연달아 쏟아냈다. 하지만 국민 피부에 와 닿는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대선기간 내내 강조했던 복지공약 이행에 필요한 135조 원의 재원 마련은 여전히 불투명한 가운데 경제민주화 공약은 당초 목표에서 후퇴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나올 정도다. 경기침체와 전·월세난 등으로 서민·중산층 삶은 더욱더 고단해졌다.
일자리 또한 늘지 않고 가계 소비나 기업 투자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 가계부채는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며 1000조 원에 성큼 다가섰다. '박근혜표 창조경제'는 이 바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무려 22조 원 이상의 엄청난 혈세를 들여 강행한 4대강 사업은 거대한 녹조현상과 수질악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바라만 보는 형편이다. 모두가 인과응보의 결과다.
교육분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장고 끝에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발표이후 교육현장의 반발이 거세다. 개별적으로 제기돼오던 불만과 반발이 공동대응으로 전환되면서 불똥이 번지고 있다. 더욱이 지난 21일 발표 예정이었던 교육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방안도 자료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연기돼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국정원 사건 외면하는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