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바다에 띄운 '민주주의'10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제6차 범국민대회가 열린 가운데 촛불을 든 수만명 시민들이 '민주주의'가 적힌 대형현수막을 펼쳐들고 있다.
권우성
- 후대가 '촛불문화'를 어떻게 평가할까 의문이 든다. 제도 정치의 한계를 보완하긴 하지만, 촛불 자체로는 무기력해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성급한 기대를 갖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집회는 단군 이래 최대 인원이, 그것도 연일 모였음에도 크게 바뀐 게 없다. 가령, 3.1운동 당시에 일제가 군대와 헌병을 동원해 많은 사람을 학살했지만 그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단통치가 문화통치로 바뀌었고, <동아일보><조선일보>도 그때 생겼으며, 정치결사도 가능해졌다.
그런데 촛불 이후에는 많은 게 막혔다. 그걸 보면 이명박 정권은 정말 '불통권력'이었는데, 박근혜 정부는 그보다 더한 것 같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라도 했다. 이명박 정권 때도 다섯 달 만에 청와대 수석들을 교체했다. 민심 못 들어 미안하다는 제스처였다.
그에 반해 박근혜 정부는 촛불이 붙으려니까 말도 못할 정도의 강공 카드를 꺼내들었다. 권력의 성격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항세력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4.19혁명이나 6월항쟁과 같은 기억만으로 역사를 보면 안 된다. 그런 게 한 번 성공하려면 정말로 어마어마한 피를 뿌려야 한다. 4.19혁명이나 5.18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 많은 분이 돌아가셨지만 다른 나라에서 민주화를 성취하는 과정에 비하면 적은 피를 흘린 것이다. 그런 걸 감안하면 역사를 길게 봐야 한다.
어떻게 보면 무기력감이 제일 위험하다. 촛불이 조금 더디게 붙고 있는 이유에는 그런 무력감도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20세기 100년 동안 고작 4년... "우리 민주주의는 취약하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진 이후 최근의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임의 공개까지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취약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취약하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한 게 얼마나 됐나. 길게 보자. 작은 패배나 당장 꽉 막힌 것 같은 상황에 좌절하지 말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난 100년 동안에 우리가 민주주의를 얼마나 해봤는가. 앞 10년은 일본 제국주의가 침략해오는 과정이었고, 36년 동안엔 나라를 빼앗겼다. 전반기 절반이 그랬다. 이어 분단되고 전쟁 터진 뒤 반공독재·군사독재가 들어섰다.
그나마 민주화 되기 시작한 게 1987년이다. 실제로 민주정권이 들어서 권력이 대중을 적으로 보지 않고,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기 시작한 게 1998~2000년 정도였다. 4.19까지 치면 지난 1900년대 100년 동안 민주적 분위기 속에서 산 건 겨우 4년뿐이다. 결국 96%는 제국주의 아니면 독재였다. 2000년대에 들어선 참여정부까지 합친 민주정권 10년으로 제국주의와 군사독재가 뿌려놓은 역사적인 무게를 씻어내는 건 무리였다. 너무 짧았다."
한 교수는 역사학자 답게 프랑스혁명과 왕정 복고 등을 예로 들며, 역사에서 반동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우린 과거청산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예컨대, 프랑스는 왕의 목을 쳤음에도 황제 제도가 두 번이나 되살아났다.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역사는 희극과 비극으로 되풀이된다고 했다. 그것이 되풀이되는 긴 시간 사이의 이야기가 <레미제라블> 아닌가.
박정희 독재를 겪고 지금 박근혜의 독재까지 겪게 됐지만, 우리가 드디어 박정희 신드롬을 박근혜에 대한 환멸과 함께 묻어버릴 것 같다. 다시는 누구도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5년을 갈 지 얼마를 갈 지 모르지만, 그 기간을 보내고 나면 쏙 들어가 버릴 거다. 마르크스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란 책에서 '황제의 망토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어깨에 마침내 걸쳐지는 순간, 나폴레옹 동상은 방돔 광장 전승 기념탑 꼭대기에서 떨어져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라고 쓰지 않았나.
어디서나 역사적 반동의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처럼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나라에서 왜 반동이 없겠는가. 유신체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프랑스 혁명사를 짧게 훑은 한 교수는 다시 한국 현대사로 돌아왔다.
"또 사람들이 착각했던 게 박정희 따로, 전두환 따로라고 생각했지만, 전두환 정권은 사실 유신 잔당들의 정권이다.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였다. 전두환·노태우가 누군가. 박정희의 경호원들이지 않았나. 유신정권의 경호장교들이 박정희가 죽고 난 다음에 13년을 집권했던 거다. 박정희가 한 걸 똑같이 따라하면서도 한편으론 박정희의 흔적을 지우려 애썼다. 추모식을 못하게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그게 한이 맺혀서 전두환 비자금 문제를 흘리는 카드로 쓰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학교를 다녀서 세상이 원래 그렇게 좋은 줄 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지옥에 비유하자면, 오랜 세월 '똥물' 속에 잠겨 있다가 겨우 고개를 내놓은 기간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다시 똥물 속으로, 암흑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절차적 민주주의 형식을 따랐지만, 실제로는 그 기득권 세력의 독점적 지배가 여전히 강하게 지속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과거청산이란, 과거의 몇몇 사건만을 바로 잡는 게 아니다. 그 지배구조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그걸 해체해서 진짜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가령,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은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위기였다. 사실 탄핵이라는 게 절차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런데 그 탄핵이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나. 당시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걸 다 하고 싶다'는 정도의 발언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선거 부정 사건이 국가기관에 의해 저질러졌다. 이건 과거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몇십 배는 더 심각한 사건이다.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떠나, 개입 자체가 심각한 문제다. 그 덕으로 당선된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자기 권력의 절차적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정원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엄정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외압을 막는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하는 건 은폐에 동조하는 거다. 이런 국헌문란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침묵하는 건 직무유기다. 따라서 대통령 퇴임하는 날부터 당장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이 수사해야 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