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한국사교과서들. 왼쪽 위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비상교육, 삼화출판사, 지학사, 미래엔, 천재교육, 법문사에서 나온 한국사 교과서다.
인터넷 갈무리
나 : "수능에서 한국사를 선택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해마다 급감하고 있다. 2005학년도만 해도 30% 정도였는데, 지난해에는 7%에 불과했다. 학생들이 수능에서 한국사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장준민(이하 장) : "서울대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한국사가 필수니 저는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는 그것이 한국사를 선택할 수 없는 이유가 되겠죠. 서울대 지원자와 경쟁해야 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을 걸요."
김동현(이하 김) : "설령 서울대가 필수 과목으로 두지 않는다고 해도 한국사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출제유형이 정형화돼 있어 준비하기 쉬운 과목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외울 것 많고 공부하기 까다로운 한국사를 누가 선택하겠어요?"
박형준(이하 박) : "저야 어떻게 되든 한국사를 선택하겠지만, 등급 컷 때문에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중학교 때만 해도 역사 공부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참 많았는데, 그들 중 고등학교 들어와 하나같이 접었다고 하더라고요. 수능을 준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다나요?"
현재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한국사는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목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수능에서는 선택 과목이다 보니 제대로 수업이 진행되는 학교는 실상 많지 않다. 수능에 교육과정이 철저히 종속돼 있는 현실에서 한국사 수업은 잘해야 교양 과목이고, 거칠게 말하자면, 많은 아이들에게 자습 시간이나 쉬는 시간으로 인식될 따름이다.
수험생 100명 중 고작 7명이 응시했다면 수능에서 한국사는 사실상 퇴출 기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책이 좋아 도서관을 제 집 드나들듯이 했다는 아이들이야 학교에서 가르치든 말든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역사를 어떻게 공부할까. 과연 그들은 8·15와 4·19가 뭔지, 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조차 모르는 청맹과니일까.
"일베, '공부'에 갇혀 사는 아이들의 소통구 아닐까요"김 : "선생님도 인정하실 테지만, 고등학교의 한국사 교육은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봐요. 되레 TV 드라마나 영화·대하소설 등을 통해서 역사를 공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저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는데, 마치 드라마 속 얘기가 역사적 사실처럼 여겨지거든요. 역사에 대해 백지상태다 보니 저희 또래 아이들의 머리는, 말하자면 '무주공산'인 셈이에요."
박 : "맞아요. 제 또래 아이들 모두 기본적인 역사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허무맹랑한 얘기들조차 역사적 사실로 믿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도 여러 사람이 계속 말하다 보면 믿게 되는.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이슈가 된 '일베 현상'도 그렇게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베 현상으로 화제가 옮겨졌다. 그들 셋 중 일베에 접속해보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또래 친구들 역시 그럴 것이라 단언했고, 일베를 하나같이 '10~20대를 위한 인터넷 놀이터'라고 불렀다. 또래 아이들이 일베에 매일 출석 확인하듯 드나들며 즐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장 : "저희 또래들이 받는 스트레스 때문이겠죠. 어른들이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취미생활을 하면서 해소하겠지만, 저희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아시다시피 많지 않아요. 고작 피시방 구석에 앉아 이름을 숨긴 채 손가락으로 수다 떠는 게 유일하다고 할 수 있죠.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학교와 학원·독서실에 갇혀 사는 아이들의 소통 방식이자 취미 생활 아닐까요?"
박 : "저도 형 생각에 공감해요. 아침부터 밤까지,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죽어라 공부만 강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잠시라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저희들에겐 거의 없어요. 점심 먹고 친구와 함께 산책할 여유도, 그럴 공간도 없는 곳이 학교예요. 그런 학교에서 벗어나 그나마 아무 생각 없이 키득거리며 웃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일베가 아닐까 생각해요. 일베에서 '재미'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거든요."
김 : "바로 그것이 바로 일베가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죠. 오로지 재미 본위이기 때문에, 사실을 왜곡시키고 편향적인 주장이라도 웬만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아요. 누군가 사실을 바로잡을 요량으로 태클을 걸었다가는, 혼자 고상한 척하지 말라며 '다굴'(집단 괴롭힘의 은어)당하기 십상이에요. 자정 작용이 애초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일베 현상, 학교폭력과 구조상 별 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