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19번째 새앨범 <헬로>를 발표한 가수 조용필이 23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뮤즈라이브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이정민
[추억①]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고 가출한 언니
언니가 집을 나갔다. 열아홉 살이었다. 지금은 흔한 말이지만 그때는 이름도 생소한 '가출청소년'이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당시 서울을 떠나 멀리 경북 안동에 '함바식당' 개업을 준비하느라 며칠씩 집을 비우던 상황이었다. '함바'는 건설현장에서 주로 쓰는 일본말로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밥집이다.
함바식당 운영계획은 고지식하게 살아온 엄마와 아버지를 들뜨게 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청과물 일을 하던 아버지가 겨우 집 한 칸을 마련하고 살다가 빚보증을 잘못 서면서 한동안 실의에 빠졌을 때, '함바식당을 하면 돈을 크게 벌 수 있다'고 유혹하는 한 이웃을 만났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지금도 나는 '함바'라는 글이 눈에 띄면 가출한 언니가 먼저 떠오른다. 그때 우리 집에 한꺼번에 몰아닥친 시련들로 피해의식이 컸다. 사촌보다 친절했던 이웃이 갑자기 사기꾼으로 변한 그 경험은 섬뜩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후 나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버릇이 몸에 배어버렸다.
'함바식당'은 결국 돈만 날린, 허황한 꿈이 되고 말았다. 언니가 집을 나간 지 일 년이 더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엄마는 언니가 부산에 가지 않았을까, 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왜 꼭 부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용필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자주 들리던 때였다.
엄마는 '큰애가 어디서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넋두리를 하곤 했는데, 이 노래는 언니가 부산에 있을 것이란 아련한 희망을 품게 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엄마의 기도였다. 깊은 우물을 퍼 올리듯 한 소절, 한 소절을 사무치게 부르는 조용필 노래는 엄마를 위한 위로의 씻김굿이었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마다목메어 불러봐도 대답없는 내 형제여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엄마는 이 노래를 들으며 그윽하고 절절한 슬픔 속에 당신을 푹 적셨다. 어쩌면, 어디서 어떻게 죽었을지도 모를 큰딸을 다시 살려내고 돌아오게 하는 그리움과 희망의 부산! 엄마에게 언니는 부산에 있어야 했다. 어쩌면 '부산에 살아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한 것이 '돌아와요 부산항에'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오장육부를 갈갈이 찢어내는 듯한 슬픔을 저 노래로 버티며 언니가 집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꽉 잡고 있었다.
[추억②]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고 동생엄마에게 막연히 '희망의 터전'이었던 부산이 시간이 흘러 아주 구체적인 '부산'이 된 건 남동생 때문이다. 올해 50세가 된 남동생이 공고(토목과)를 졸업할 즈음, 모 건설회사 공채에 합격한 것이다. 동생이 처음으로 발령받은 공사현장이 부산이었다. 동생은 졸업과 동시에 바로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동생은 혈혈단신 월남한 아버지가 나이 마흔에 얻은 3대독자다. 남아선호사상이 극심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딸 많은 집은 계속 자식을 낳았다. 그래서 아들을 낳으려고 7공주, 1남3녀, 1남4녀를 둔 집이 동네에 흔했다. 엄마는 언니와 나를 낳고 동생을 낳은 후에 단산을 했다. 아마 동생이 딸이었다면 넷째까지 낳으려고 계획했을 지 모른다.
동생은 엄마한테 늘 애틋한 '우리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엄마의 애정이 깃든 최고의 표현이었다. 그 강아지는 천방지축으로 뛰어놀다가 팔도 부러지고 다리도 부러지곤 했지만 엄마에게는 귀여운 강아지였다. 엄마는 '우리 강아지' 때문에 항상 노심초사였다. 엄마는 아들을 팔아야 명이 길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터라, 절에다 이름을 올리고 동생의 수양엄마를 만들었다.
난 동생의 수양엄마라는 사람이 우리 집에 가끔 와서 주문(염불)처럼 중얼거리는 소리가 무서웠다. 햇빛에 그을린 까만 얼굴에 깡마른 할머니가 수양엄마라는 것도 이상했다. 수양엄마가 두어 달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와서 기도해주고 갈 때마다 엄마는 흰봉투를 건넸다.
금이야 옥이야 20년 가까이 끼고 살던 '우리 강아지'가 엄마 품을 떠났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다시 엄마의 삶 속으로 깊이 침투했다. 부산에 내려간 동생은 한동안 집에 올 수 없었다. 엄마는 '부산 동래구~'로 시작하는 현장 주소만 갖고 '우리 강아지'를 만나기 위해 직접 부산에 내려갔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렇게 또 '우리 강아지'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특별한 노래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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