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한 아빠무뚝뚝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누구보다 자상한 아빠입니다.
한명라
그럴 즈음 2006년 12월, 시아버님의 생신 때였습니다. 시댁 식구 모두 한자리에 모였을 때, 남편이 아주 편안하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처제가 서울에서 영어학원을 하려고 하는데 아이들 엄마에게 함께 일하자고 합니다. 나는 보내려고 하는데, 어떻게들 생각하는지요?"당사자인 저조차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던 터이기에, 저는 당연히 시댁 식구들이 반대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시아버님을 비롯하여 손위 시누이들조차 이구동성으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동생은 믿어도 된다. 올케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서울로 가서 일을 해봐라. 서울에 가서 지내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 내려와도 되고" 하고 말해줬습니다.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저의 2007년 2월부터 서울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세 곳으로 헤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경남 창원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는 전남 담양에, 그리고 저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서울에.
그렇게 시작된 주말부부 시절 남편은 소리없이 딸과 아들, 그리고 마누라를 위해서 자신만의 기도를 두꺼운 대학 노트에 정성을 담아 글로 적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남편이 우리 가족을 위해 노트에 적어 준 글의 깊은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남편의 말에 의하면 <반야심경>과 여러 불교 서적을 읽고 자신이 깨닫게 내용을 두 아이와 마누라를 위해서 적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누가 나로 하여금 사람으로 태어나 참을 닦는 길에 매하지 않게 하였는지 그 경사롭고 다행함을 어찌 말로 다 하리오. 방일심을 내지 말며, 해태심을 내지 말며, 탐욕과 음욕에 애착하지 말고, 반야의 지혜로써 자성본리를 비추어 봄을 잊지 말게 하라'는 글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두 아이와 아내를 멀리 떠나 보내고 혼자 생활을 하게 된 남편은, 가족들을 위한 염려와 간절한 사랑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노트에 적어 깜짝 선물로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남편의 정성이 담긴 기도가 적힌 노트는 두 아이와 저를 위한 노트 말고도 2권이 더 있습니다. 당시에 자신의 처지를 많이 힘들어하던 처제와 엄마를 잃고 상심해하던 저의 친정 조카에게 남편은 자신의 정성이 담긴 노트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겉모습은 무뚝뚝해 보여도, 내면으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속이 깊은 남편의 사랑은 제가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야 할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