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당하는 국정원, 겹겹이 바리케이드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정치개입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있다. 국정원 정문앞에 비리케이트가 겹겹이 설치되어 있다.
권우성
지난달 30일, 사상 두번째의 치욕스런 압수수색을 당한 국정원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인 행태는 이런 어두운 역사의 반복이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밝혀낸 국정원 연계 아이디의 여론조작 관련 글들은 하나같이 외부의 적(북한)에 대한 공세를 바탕으로 내부의 경쟁자(야당후보)를 적과 동일시하는 전략에서 작성됐다. 여기에 내부의 적으로부터 자유와 안정을 수호할 단 하나의 인물로 누가 선택되었는지는 당연지사다.
처음 수사를 맡았던 경찰 수뇌부가 수사담당자도 모르게 대선 3일 전 '혐의 없음'을 섣부르게 공포했음에도, 이제 사건의 진실은 하나 둘 씩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나라의 공안기관들은 '내부의 적'을 만들어내기에 여념이 없다. 검찰이 국정원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간 바로 그날, 국정원 사건에 대한 어이없는 수사결과 발표로 톡톡히 망신당했던 경찰은 청년단체 회원 10명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가 이 중 한명을 체포하면서 명예회복을 노렸다. 이적단체를 구성했다는 무시무시한 혐의로.
어마어마한 정보기관과 같은 날 압수수색을 당한 곳은 '6.15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청년모임 소풍'(소풍)이라는 작은 청년 단체다. 경찰은 이들이 연방제 통일에 동의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등 북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단체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지만, 단체의 강령 어디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오직 2000년 남과 북의 정부가 공식 합의한 '6.15공동선언'에 대한 대중적 실천을 강조한 내용뿐이다.
사실상 2000년 이후 거의 모든 통일운동단체는 더 이상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지 않고 있으며, 대신 남과 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 실천을 내세우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과 북이 각자의 현 체제를 인정하자는 연방제에 동의하거나 외국 군대의 철수를 주장한들 또 어떤가?
그 정도의 의견개진이 우리 체제를 위태롭게 한다는 발상은 외려 우리 체제에 대한 진정한 모독 아닌가? 더구나 압수수색을 당한 소풍이라는 단체는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청년실업문제나 최저임금, 봉사활동과 반전평화 운동에 주력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년단체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관련인사들이 이적단체 구성혐의로 구속된 '6.15공동선언실천 청년학생연대'(6.15청학연대)에 대한 가입을 명분으로 2011년 5월 4일 '6.15와 함께하는 청년우리' 회원 5명, 2012년 5월 22일 부산 청년단체 '젋은 벗' 회원 3명, 2012년 5월 24일 대구지역 청년단체 '길동무' 전직간부 3명, 2012년 12월 27일 경남창원지역 청년단체 '푸름' 회원 6명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된 바 있다.
그러나 6.15청학연대는 그 이후 실질적으로 해소되어 현재 아무런 활동도 없는 상태다. 경찰이 국정원 사건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몇 년 간 묵혀 놓았던 사건을 끄집어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지난달 30일 압수수색 대상자 중에는 이미 탈퇴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종북좌파' 낙인찍기의 위험성 국정원의 댓글 조작과 청년단체 압수수색을 비롯해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공안사건은 모두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광기를 기반으로 삼거나, 이를 적극 부추기는 데 이용되고 있다.
영화 지슬이 단지 영화 속의 이야기거나 과거의 사건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 당시의 참혹한 살육전의 논리, 즉 모든 합리성을 싸잡아 야만의 구렁텅이로 던져 버렸던 내부의 적에 대한 극도의 반감과 제거 심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