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 쾅! 첫 접촉사고... "아저씨, 문이 안 열려요"

[나의 애마때문에 생긴 일] 초보시절, 누비라와 함께 강남을 누비다

등록 2013.04.03 13:49수정 2013.04.0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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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즈음이었다. 직장생활 4년차쯤 되었던 나는 서울 잠실에 살면서 삼성동에 있는 회사를 다닌 터라,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것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동료직원과 거래처 방문을 같이 다니다가 혼자 다녀야 되는 상황이 되서 회사차를 운전하게 됐다.


면허를 딴 후에 제대로 운전을 해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처음부터 새 차를 사기에는 부담스러웠고, 우선 중고차를 구입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중고차 매매 사이트를 검색해서 눈이 벌개지도록 싸고 괜찮은 중고차를 찾았고, 마침내 눈에 들어오는 차가 있었다. 15만km 넘게 뛴 흰색 누비라였다. 가격은 200만 원 정도. 결심을 하고 영등포에 있는 중고차 매장을 방문해서 과감히 '질렀다'. 바로 집 앞으로 차가 탁송되어 왔다.

"엄마 아빠, 나 차 샀어요! 집 앞에 왔대!"

부모님께 곧 중고차를 지르겠다는 말은 했지만 지르고 왔다는 말은 아직 못하고 있던 차에 떡 하니 차가 왔다고 하니, 부모님은 눈에 휘둥그레져서 냉큼 나를 따라 내려오셨다. 내 차인 건 맞는데, 도저히 운전대를 잡을 엄두를 못 내는 나를 보고 아빠가 운전대를 잡고 나는 조수석에 탔다. 불안한 침묵 속에 동네 한 바퀴를 돈 뒤 차 키를 넘겨주면서 아빠가 말씀하셨다.

"이 차로 고속도로는 타지 마라."


겨울엔 차 문도 안 열리던 누비라, 결국 사고쳤네

그날 이후 운전연습을 위해 잠실에서 회사까지 매일 덜덜 떨며 차를 몰고 나갔다. 차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였다. 무식하니 용감할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오고 습한 날에는 차 앞 유리창에 하얗게 습기가 차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서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한 손으로는 손으로 유리창을 문지르며 앞이 보이지 않는 공포 속에 출근을 한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가 따로 없다 싶다. 집 앞 주차공간 안에 차를 넣지 못해 낑낑대고 있으면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이 주차를 대신 해주기도 했다.


오래된 차다 보니 추운 겨울에 히터를 틀어도 시원치가 않아서 오들오들 떨리고 손이 시려웠다. 그나마 추운 건 참을 수 있었는데 가끔씩 차 문이 얼어서 열리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조수석이 열리면 조수석으로 타서 운전석으로 옮겨가고, 내려야 하는데 운전석이 안 열리면 조수석으로 내리곤 했다. 브레이크마저 밀려서 미끌어질 걸 감안하고 미리미리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대한민국 BMW와 벤츠가 다 몰려나왔나 싶을 정도로 외제차가 전후좌우에 포진하고 있는 강남 한복판에 나의 누비라가 당당히 길을 누비고 있었다. 그날은 며칠 전 내린 눈으로 길이 미끄러웠다. 앞 차가 서는 것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내리막길에서 나의 누비라는 쭉 미끄러져 앞에 서 있던 차를 들이받았다. 다행히 내 신세를 망칠 외제차가 아닌 택시였다.

처음 일어난 사고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한 번 앞 차를 또 들이받았다. 택시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받히다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선 사과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차 문이 꼼짝을 안 했다. 하필 이런 때 차 문이 말을 안 들을 줄이야... 할 수 없이 조수석으로 넘어가 조수석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수석 문도 안 열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뻑!'... 차 문이 열리는 동시에 자존심에 금이 갔다

사고를 낸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사고를 당한 택시기사가 차에서 내려 내 차로 다가왔다. 나는 결국 낑낑거리며 창문을 열었다. 물론 창문 열리는 모습도 시원치 않았다. 당황함과 창피함으로 시뻘개진 얼굴로 내가 말했다.

"아저씨, 죄송한데 차 문이 얼어서 안 열려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기사님은 황당해 하더니 내 차문을 열려고 낑낑대기 시작했다. 운전석을 포기하고 조수석 문을 열려고 용을 쓰셨는데... 결국 '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내게는 그 소리가 자존심에 금 가는 소리로 들렸다. 나는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건너가 차 밖으로 탈출했다.

"왜 박았어요? 브레이크가 밀리나?"
"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왜 두 번 박았어요?"
"...죄송해요ㅠㅠ"

초보운전에다 '똥차'를 끌고 온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택시 기사님과 승객은 다행히 뒷목을 잡거나 삿대질을 하지 않았다. 나는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 보험처리를 했다. 그 분들은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지만 경미한 사고라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날 크게 다친 것은 나의 자존심이었다.

그날의 감당할 수 없었던 창피함 이후 차가 가끔씩 뻥 뻥 터지는 소리를 냈지만 3개월을 더 버티다 결국 새 차를 샀다. 브레이크도 안 밀리고 차 문도 잘 열리니 정말 날아갈 것 같았다.

이젠 어디 가서 운전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들을 정도고 차도 잘 나가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혼자 웃음이 쿡쿡 난다. 만약 추운 겨울, 누군가 내 차를 뒤에서 박고도 내리지 않고 있다면, 나는 친절하게 뒤로 걸어가서 '뻑'소리를 내며 차 문을 열어줄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 공모
#나의 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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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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