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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 행사는 곧 시작되었다. 철조망을 기준으로 병사 지대 쪽 어른들이 먼저 2미터의 거리를 물러섰다. 군데군데 감시 직원이 배치되고, 이쪽 아이들 역시 철조망을 기준해서 2미터 거리를 표시한 직선위에 일정하게 발을 머물며 섰다“ 소설 <당신들의 천국> 중
안형준
하지만 그것은 조 원장이 생각한 '천국'이지 한센인의 천국은 아니었다. 각자 다른 운명을 타고나 살아온 까닭에 섬 주민과 조백헌 원장의 융합은 불가능했다. 소록도 주민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주려는 조백헌 원장과 그를 믿지 못하는 한센인의 관계는 오마도 간척사업의 실패로 끝난다. 하지만 소설은 일반인 여성과 과거 병을 앓았던 남성의 결혼으로 마무리된다.
고흥터미널에 내려 녹동행 버스를 기다렸다. 남쪽이라 그런지 뺨을 스치는 바람이 매섭진 않았다. 남해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다 보니 어느새 녹동항. 밖에서 섬을 바라보면 작은 사슴 모습을 하고 있다 해서 지어진 이름 '소록도'. 녹동항에서 바라본 소록도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소설 속 한센인들은 인간적인 소망과 자기 생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탈출을 시도한다. 외부인이 만들어가는 '당신들의 천국'에서 노역과 폭압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600m 남짓 되는 거리를 나무판자를 의지해 건너다 물살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다. 과거에는 소록도에 가기 위해 배를 이용해야 했지만, 지금은 소록대교가 생겨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소록대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국립소록도병원'이라는 큼지막한 간판이 보인다.
소록도병원에 들어서서 주차장을 거쳐 맨 처음 만나는 곳이 '수탄장'이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나무와 바다 풍경이 조화를 이뤄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림 같은 풍경과 달리 이 길은 과거 '탄식의 장소'라 불렸다. 70년대까지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인과 감염인의 접촉을 막는 철조망을 설치했다. 병사지대에 거주하는 환자 부모들과 관사지대에 거주하는 자녀가 철조망을 두고 먼발치에서 서로 바라보며 안부를 전하는 게 고작이었다. 소설 속 상봉 장면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