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이날 "다시 한번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유성호
여기서 언급한 후보의 경쟁력은 예컨대 TV 토론을 누가 잘했나 하는 식의 경쟁력이 아니다. 박정희와 함께 젊은 시절을 보냈던 50-60대에게는 박정희-박근혜 자체가 말 그대로 신화적인 존재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곧 정의였다. 배고픔은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가장 힘든 고통 가운데 하나이다. 박정희-박근혜 신화는 이렇게 몸으로 체득한 신화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가치로도 치환하기가 어렵다. 이는 그 후속세대가 피를 흘려가며 민주주의를 쟁취한 신화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박근혜가 선거 막판에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세"를 외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는 노령화에 따른 세대별 유권자 분포의 변화와 맞물려 유효적절했다. 아마 앞으로도 높은 투표율이 진보에 유리하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MB정권이 지난 5년 동안 공들인 노력이 이번 대선에서 큰 빛을 발휘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MB정권은 국세청 국정원 청와대를 동원해서 민간인 불법사찰을 일삼았고 집권당 인사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른바 '선관위 디도스'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었지만 어느 것 하나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도 못했다. 그 여파는 이번 대선에서 이른바 '십알단 사건'과 국정원 여직원 사건 의혹으로 연결되었다. 단죄되지 않는 범죄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법이다.
뿐만 아니라 MB 정부가 임기 내내 공을 들인 언론 장악은 이번 대선을 위한 신의 한 수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큰 선거마다 새로운 매체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새로운 매체가 없었다. SNS는 이미 겪어 봤고, 지난 서울시장 선거와 총선에서 위력을 발휘한 '나꼼수'는 총선 때 '김용민 막말 사건' 이후 그 위세가 많이 꺾였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공중파를 위시한 기존 매체가 큰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방송사들의 편파방송은 사실 눈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였지만 그것을 제어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MB 정부가 그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공중파를 점령한 결과는 이번 대선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무상급식 논란 때 이미 거론되었던, "무상급식 때문에 학생들이 멀쩡한 우유를 내버린다"는 보도가 선거 직전에 갑자기 다시 등장한 것은 그냥 웃고 지나갈 수준이라 하더라도, 선거와 직접 관련된 중대사건을 다루는 태도는 대단히 편파적이었다. 예컨대 국정원 여직원 의혹 사건이나, 선관위가 직접 고발한 '십알단 사건'은 오히려 야당의 생떼쓰기로 윤색되었으며 결과적으로 1992년 대선에서의 초원복집 사건처럼 보수층의 결집을 강화하는 결과만 초래했다.
만약 정부부처, 수사기관, 언론이 제 역할을 수행했더라면 애초에 이런 범국가적인 여론조작 의혹이 애초에 생기지도 않았겠지만, 설령 이런 일이 생기더라도 집권당이 치명상을 입어야 당연한 사건들이었다. 보수 전문가로 알려진 경찰대학의 표창원 교수 말처럼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을 탄핵시킨 워터게이트보다 더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단지 '김용민 막말' 하나가 선거판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에 비해 보면 국정원 의혹이나 십알단 사건이 이 정도 수준에서 마무리된 것은 한국 사회의 대단히 불공정한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2차 TV 토론이 끝난 뒤에 모든 언론에서 일제히 박근혜의 재산형성 의혹과 탈세를 보도하며 "세금 안 낸 대선 후보"라는 제목을 일주일 내내 뽑았더라면 박근혜가 이렇게 높은 득표율을 올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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