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18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야권 후보단일화 협의 재개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남소연
여기에 14일 오후에 있었던 단일화 협상 중단 선언은 많은 야당 지지층에게 안철수에 대한 의구심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정치 혁신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라는 의견과 지지율 하락에 대한 정치 공학적 선택이라는 의견이 대립했지만, 아무래도 전격적인 협상 중단에 짜증을 낸 사람들이 좀 많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를 두고 유시민은 "(축구로 보면) 몸싸움하면서 (문 후보측이) 어깨로 좀 밀었는데, 안 후보쪽이 그라운드에 누워서 심판한테 '경고장 내라' 이렇게 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촌평을 했고, 진중권은 "민주당이 안철수에게 좀 져줘도 된다. 안철수 캠프 요구대로 민주당이 좀 더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안철수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힘을 실어준 진중권의 멘트에서도 안철수에게 불리한 프레임이 하나 있다. 바로 '좀 져줘도 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문재인의 상승 모드에는 민주당 측이 일관되게 제기한 '맏형론'이 국민들에게 먹혀 든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큰 형처럼 문재인 후보에게 안철수의 문제 제기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연출했고, 단일화에 대해 내놓는 대안들의 논리도 설득력이 있었다. 단일화가 중요한 사안이고 이를 위해 방법론을 양보할 수 있다는 것과 남은 시간 관계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충분히 정통 야당 세력을 설득할 수 있는 화법이었다.
물론 조직이 열세인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 후보에게 끊임없이 요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긴 하지만, 지지율의 우위에 있는 후보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달라고 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치게 한 측면이 분명이 있다. 지난 단일화 협상 중단 선언은 내부에서는 설득력이 있었을지 몰라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약간 뜬금없기 때문이었다.
안철수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은 캠프의 반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뉴시스 보도에 의하면 안철수 캠프는 작금의 사태를 두고 '정치 9단에게 당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것은 상당히 징후가 안 좋은 캠프의 반응이다. 왜냐하면 역대로 정치권 경력이 일천한 후보들이 열세에 돌입할 때 나오는 천편일률적 반응이 정치적 술수에 당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정치력과 정치적 술수는 어감이 180도로 다르지만, 차이는 백지 한 장도 나지 않는다. 정치란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고도의 심리 게임이다. 어떤 정치인은 심리 게임에만 매몰되어 정치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잃어버리고, 또 어떤 사람은 정치에 뛰어 들었다가 처절히 실패하고 '정치와 자기는 생리상 맞지 않는다'는 식의 위안을 하기도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정치는 정치권에서 많이 회자되는 경구처럼 '쓰레기통에서 피는 장미요, 진흙에서 피어나는 연꽃'과도 같은 것이다. 쓰레기통과 진흙에서 구르며 내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쓰레기와 진흙 밭에서 꽃을 피워내야 한다는 당위를 망각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정치의 숙명이자 묘미와도 같은 것이다.
필자는 지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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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된다는 가정 아래 이야기하자면, 야권 단일 후보 국면에서 위기를 맞이하여 능력을 검증해 보는 것이 낫지, 본선 국면에서 검증하는 것은 성공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매우 위험한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의 독배는 왜 성공했을까 마지막으로 정통 야당 세력의 일원으로서 어떤 사람이 야권 단일 후보가 되면 좋을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지지율이 엇비슷한 후보들끼리의 단일화 성공 사례는 마지막에 사단이 나기는 했지만, 2002년도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사례가 유일하다. 1997년의 이회창-조순의 단일화나 DJP 연대의 경우에는 지지율 편차가 크게 나는 와중에 이루어져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