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 매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원심이 확정된 9월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곽 교육감이 청사를 나서며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유성호
그러나 법원은 일관되게 사전 매수에 의한 금품 제공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퇴에 대한 사후 대가로 보아서 유죄를 선고했고, 사후매수죄 위헌 주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매수죄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232조는 후보매수에 대해서 7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제230조(매수 및 이해유도죄)에서 말하는 "금전·물품·차마·향응 그 밖에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한 자"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곽노현 사건에 적용된 후보매수죄를 검찰과 법원의 잣대로 문-안 단일화에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
둘 중의 한 명이 대통령 후보가 되고 다른 한 명이 총리가 된다면(또는 약속만 하더라도) 사후매수죄에 걸릴 수 있다. 왜냐하면 공직선거법 제232조에 의해 후보사퇴를 대가로 '공직'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명이 사퇴하고 대통령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도 매수죄에 걸릴 수 있다. 공직선거법 제232조는 후보사퇴를 대가로 공직뿐 아니라 '사적인 직'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후매수죄가 존재하는 한(위헌이 아니라면) 후보단일화와 공동정부는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사후매수죄, 과연 타당한가 최근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 측은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피 말리는 접전을 벌였던 경쟁 후보 힐러리 클린턴에게 선거 운동 도중에 국무장관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하며 사퇴를 압박했다. 우리 검찰 기준으로 하면 명백한 후보매수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더 큰 일도 있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후보 선출 과정에서부터 본 선거에 이르기까지 기간도 길고, 천문학적 액수의 비용이 투입된다. 그런데 지난 2008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승리한 오바마는 상대 후보인 힐러리에게 선거 운동 기간에 그녀가 진 빚을 대신 갚아 주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에 임명됐고, 오바마 1기 임기 내내 그 자리를 지키다가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자 사의를 표명했다. 우리 식으로 하면 금품과 공직 제공을 대가로 한 후보매수일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년 당선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경우는 더하다. 연임 제한 규정 때문에 출마를 할 수 없게 된 푸틴은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총리가 되었다. 다시 작년 선거에 대통령으로 출마하였고 대통령 경쟁 상대였던 메드베데프에게 총리직을 제안하며 결국 후보에서 사퇴하게 했다. 역시 명백한 후보매수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근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올랑드 사회당 후보와 박빙의 접전을 펼치던 사르코지 대통령이 80만유로(한화 약 11억원)를 주기로 약속하고 보수적인 기독민주당 크리스틴 부탱 후보를 사퇴시켰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우스운 것은 사퇴한 부탱 후보가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후보매수라는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 왜 약속한 돈을 주지 않느냐는 채무불이행, 즉 '빚 독촉'이었다. 우리 돈 11억원인 80만 유로가운데 48만 유로만 받고 32만유로를 떼일 위기에 처했다면서 빨리 채무를 이행하라는 것이었다.
사르코지 측에서도 그런 약속을 인정하면서도, 현 시기에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사후매수죄가 아니라) 사전매수죄로 감옥에 갈 일인데 그들은 도덕성 논란은 있을지 몰라도 법적·정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사후매수죄라는 조항은 우리나라에서만 서슬 퍼렇게 살아있다. 이 법조항이 있는 일본도 이 조항이 사문화된 상황이다. 사퇴해서 매수할 후보가 없는데 무슨 사후매수냐는 항변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언어학적으로도 사후매수는 형용모순이다.
헌법재판소 왜 위헌심판 미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