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후 자원봉사자들은 연평도 곳곳에 벽화를 그려 마을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연평도 면사무소 인근 한 골목길.
한만송
그는 또한 "포격 사건 당시 한달은 사우나에서 지냈고, 한달은 김포 양곡아파트에서 3~4가구가 한 집에서 지냈다"며 "당시 육지 사람들은, 연평도 사람들이 아파트 한 채씩 받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다"고 서운한 마음을 나타냈다.
그는 "그래도 연평도가 내 고향이 됐고, 내가 살아갈 곳이라 다시 찾았다"며 연평도에 대한 애증을 털어놓았다.
포격 사건 후 부모님이 사는 연평도로 다시 들어온 김아무개(31)씨는 "(한국 군인이 훈련으로) 포 쏜다고 방송하면 어른들은 불안해 한다"며 "군인도 훈련을 해야 하지만, 주민들 불안감을 줄이는 쪽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김아무개씨도 "어제(2일)도 사격훈련을 했는데, 나는 훈련을 알리는 방송을 못 들은 상태였다"며 "순간 긴장했다. 나도 병이 드는 것 같다"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어 "포격 사건 당시 막내는 유치원 다니고, 큰 아이는 초등학교 다녔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불안감이 더 크다"며 "당시 사건 이후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진단해보지 못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여러 형태로 지원을 해도 연평도 주민들은 "지원이 턱 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주민 일부는 "포격 사건 후 정부에서 각종 공사를 하지만,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정주비로 월 5만 원 주는 게 전부다"며 "지금은 각종 공사 때문에 숙박과 음식 장사가 잘 되지만, 이들이 빠져나가면 생계가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