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쓰마마>
프로덕션 공방
야심차게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표방하는 박근혜 후보는 과연 미혼모의 문제에, 혹은 일하는 어머니의 문제에 어떤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표방한다면 적어도 본인이 '여성'이라는 점 이외에 양육이나 육아, 가족을 구성하는 권리에 대해서 보다 여성친화적이고 차별적인 정책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왜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 받지 못할까 박근혜 후보는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사람임을 역설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여성계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못해 냉랭한 상태이다. 왜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가장 유력한 여성 후보임에도 여성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할까?
한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알파걸 현상이 크게 주목받았다. 남성과 동등한 능력 및 스펙을 갖추었거나 더 나아가 남성을 위협할 정도로 탁월한 업무 능력을 발휘하는 알파걸은 성차별시대를 마감하게 만드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의 논의들은 왜 알파걸이 알파맘, 혹은 알파우먼이 되지 못하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알파걸은 부모, 특히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과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면서 사회에 나온다. 그러나 시험점수나 봉사활동 등 수량화할 수 있는 비교적 공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학교와 달리 사회는 학연, 지연을 비롯한 온갖 연줄과 줄서기 등 여러 가지 복합적 기준이 난무하는 정글이다. 알파걸은 대학의 문턱을 넘어서 취업하는 순간 더 이상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며, 유리천장의 높은 벽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된다.
특히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험난한 고개에서는 그동안 야근과 주말특근으로 버텨오던 대부분의 알파걸들은 쓰러지고 만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며 같은 대학원 동기였던 남편보다 좋은, 소위 글로벌한 S기업에 취직했던 후배도 결혼과 출산의 고개에서 쓴 잔을 마셨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봐줄 사람이 없어 한동안 지방 시댁에 아이를 맡겼으나, 결국 연봉이 거의 천만원이나 깎이는 것을 감수하면서 칼퇴근하는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겨야했다.
한국의 알파걸이 알파맘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한국경제연구원은 육아 및 자녀 교육에 있다고 분석하였다. 한국경제연구원이 7월 17일 발간한 '저출산 시대에 대비한 기업의 인력활용' 보고서에서 '고학력 엄마'일수록 자녀의 연령대가 올라가더라도 경제활동에 복귀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는 고학력 여성에겐 자녀 교육이 경제활동 결정에 중요한 요인임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미혼모에게나 알파맘에게나 모두 힘겨운 일이다. 박근혜 후보가 '여성대통령'으로서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여성의 경험과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는 박근혜 후보가 아이를 출산해서 키워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의 경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단순한 논박이 아니다. 사실 아이를 출산하지 않은 것은 문재인, 안철수 두 남성 후보 모두 마찬가지이며 박근혜 후보와 다를 바 없다.
안철수 후보가 밝힌 바 있듯이,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는 정치적 혁신은 단지 성별이 여성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통령이 당선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여성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소외되는 여성의 경험과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이고, 이는 더 나아가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반영한 정책을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여전히 사회적 기득권을 대변하는 정책을 지지해왔으며,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차별을 해소하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혁신은 단지 한 두 명의 여성 고위직 관료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삶의 전반적인 질이 개선되는 것을 통해 완성된다.
박근혜 후보는 여전히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을 입고 가신그룹의 보호를 받으며, 사회에 갓 나온 알파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가 알파걸을 벗어나 미혼모나 알파맘을 도울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는 아버지의 후광 뒤에서 '여왕'으로 군림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공주'에만 머물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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