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5일 오전 경상남도 창원 경남대학교를 방문, 경남지역 총학생회장단과 학생들의 고민인 취업난과 반값등록금 등에 대한 질문을 경청하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유성호
한 국가를 하나의 온전한 국가로서 제대로 운영하려면 무엇보다 '자기완결성'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각 개인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하나의 완결적인 구조가 국가이다. 그런데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우리의 자아를 실현하려면 기본적으로 그에 필요한 영토와 자원(특히 식량자원과 에너지 자원)을 확보해야만 한다. 이를 외부로부터 수호하는 물리력은 군대의 형태로 실물화되고, 자원의 확보와 배분은 경제활동으로 드러난다. 또한 현실의 모든 국가는 자기 혼자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외교를 통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완결성을 높인다. 자기완결성이 높은 국가에 대한 별도의 이름이 필요하다면, 나는 '문명국가'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현대적인 국가를 제국주의 식민지하에서 타국 땅의 임시정부로 시작해야 했던 한국은 자기완결성이 거의 전무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이제는 어엿한 중견국가가 되었지만, 그 태생적 한계로 인한 취약함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군사권이다. 군사권에 관한 한 한국은 자기완결적이지 못하다. 전쟁을 개시하거나 종료할 권한(한국은 불행히도 한국전쟁의 정전협정당사자가 아니다.)이 아직 우리에게는 없다. 한국군의 가장 큰 문제는 낙후된 무기나 짧은 미사일 사거리가 아니라, 독자적인 군사작전 수행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자원 확보는 어떨까?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2.6%에 불과하다. 유엔은 이상기후 등의 이유로 내년에 식량위기를 경고했다. 국내 농산물 가격의 폭등으로 지금 우리는 외산 삼겹살에 상추를 싸먹어야 할 지경이다. 에너지 자원은 원래부터 취약했다. 중동이 불안하면 유가에 따라 나라경제가 들썩거린다. 이 둘은 모두 한국에서 사양길에 접어든 1차 산업과 관련이 깊다. 선진문명국가일수록 1차 산업이 강한 것은 자원 확보에서의 자기완결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자원인 인적자원도 우리 자체의 완결적인 구조 속에서 키워내지 못한다. 보육비나 교육비 때문에 아이 낳기가 겁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좀 사는 집 치고 자기 자식들 외국에 안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기가 길러 낸 국내박사는 외국박사에 비하면 인간취급을 못 받는다. 전문적인 학과 내용은 한국말이 아니라 영어로 배워야만 제대로 배웠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노벨 과학상이 아직 못 나오는 이유도 비슷하다.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과학적 성과에 대한 오리지낼리티(originality)가 있어야 하는데, 학문적 자기완결성이 취약한 한국에서는 그 오리지낼리티를 확보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 아직 번듯한 문명국가라고 말하기가 무척 부끄럽다. 해방된 뒤 내전을 치르고 절대빈곤을 벗어나 민주화를 하느라 우리는 우리의 문명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한국이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누가 묻는다면, 나는 지체 없이 문명국가 혹은 문명사회의 건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문명국가의 요체는 높은 수준의 자기완결성이다.
문명화 척도로서의 자기완결성이라는 시각으로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면 한국사회의 야만적인 속성들이 속속 드러난다. 2012년 현재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4580원, 월 96만원이 채 안 되는 수준이다. 이 돈으로 한국사회에서 문명인으로서의 자아실현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 자체가 쓴웃음만 짓게 한다. 많은 대학생들에게는 이제 그 본분이 학업이 아니라 알바가 돼 버렸다. 졸업해도 취직은 어렵고, 집값이 많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내 집 마련은 여전히 쉽지 않은 꿈이다. 행여 큰 병에 걸리거나 갑자기 실직되면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순식간이다.(쌍용차 사태를 보라.)
'착취 사회' 해결할 철학과 비전 보여야 빅3 후보들은 너나없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고 하지만(물론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국 사회의 이런 총체적인 모순을 조망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정책은 땜빵식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지도자가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갖고 있느냐, 국민 개개인이 문명인으로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