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주택가를 걷는 자매 우리 동네 골목길 초입. 자매의 모습이 다정하다.
장윤선
우리 부부는 없는 살림에도 둘 다 늦은 나이까지 공부를 했다. 부모님께서 도와주실 형편이 못 되어 등록금과 생활비를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해결해가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벅차고도 벅찬 삶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부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당시 우리의 가치관이었다. 덜 벌고 덜 쓰고, 공부하고 글쓰고, 돈이 좀 모이면 여행을 다니고, 평생 서울에서 집 하나 마련하기 위해 인생을 걸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신혼살이 1년은 나름대로 행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좁디좁은 골목 가득 쏟아져나온 사람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큰 맘 먹고 그 동네에서 가장 비싼 쇠고기 집에 가서 한우를 안주 삼아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우리가 다세대주택 세입자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 첫 번째 사건은 꿈 같은 신혼생활이 1년 조금 지났을 때 일어났다. 집 안에 도둑이 든 것이다. 큰 방 맞은편 작은 방에 우리 부부가 뻔히 있는데도, 도둑은 큰 방의 창문을 소리 없이 밀고 들어와 얼마 안 되는 결혼 패물과 우리의 지갑, 가방을 몽땅 가지고 도망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말로는 이 지역에서 연이어 강도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용의자는 고등학생 2인조였고, 옆집 반지하에 사는 할머니는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고 했다. 마침 우리 부부 둘 다 인터넷으로 뭘 하느라 이어폰을 꽂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도둑과 마주쳐 칼부림이라도 났을 판이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둑들이 남겨놓고 간 침대 시트 위의 발자국들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두 번째 사건은 더욱 엽기적이었다. 도둑이 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에 화장실을 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화장실 창틀에 누군가가 다 쓴 콘돔을 올려놓고 간 것이다. 콘돔의 비닐 포장은 화장실 바닥에 던져져 있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신랑이 급히 뛰어나가 화장실 뒤쪽으로 돌아가 보니, 화장실과 직결된 뒷담 안의 작은 공간에서 '심상찮은' 일을 벌인 것이 확실했다. 이미 아무도 없는 뒷담의 어두운 공간에서는 이 동네의 명물로 자리잡은 고양이들만 야옹야옹 울어댔다.
아파트-다세대, 강북-강남... 세입자에게도 '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