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 소원면의 한 가정집이 이번 집중호우로 침수됐다. 사진은 침수된 주택의 가구를 정리하는 모습. (자료사진)
김동이
침수된 반지하방 문제가 일단락된 다음날부터 나는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새 집을 보러 다녔다. 전세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그 사이 전세값이 올랐기 때문에 내가 가진 전세 보증금으로는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지상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은 그렇게 무참히 깨졌다.
당시 난 가진 돈이 너무 없었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몰라도, 부자 동네 쪽으로 가보고 싶었다. 돈암동, 평창동, 북아현동의 고급주택가를 구경하고 나서 연희동에 이르렀다. 연희동 주민들에게는 유감스런 말이지만, 연희동 하면 당시 나는 전두환, 노태우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최루탄 연기 속에서 전두환, 노태우 체포하러 가자던 뜨거운 외침소리가 가슴 한 구석에서 메아리쳤다. 물론 그날 그들을 체포하러 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연희동 고급 주택가 초입에 있는 전셋집을 구했다. 낡은 단독주택에 딸린, 역시 '반지하'였다.
"혹시 여름에 비오면 습기 차나요? 반지하에 물이 들어온 적은 없었나요?"그런 일은 없었어요. 아.직.까.지.는."반지하에 살고 있는 신혼부부의 망설이는 말꼬리를 읽었어야 했다. 그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왜 나를 그토록 환대하는지 눈치 챘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수유리를 벗어나고 싶단 간절한 생각밖에 없었다. 다가구주택가의 비좁은 골목길을 벗어나고 싶었다. 축축한 침수의 기억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폭우만 오면 가슴이 덜컥연희동 반지하 전셋집에 깃들어 살던 1997년 늦가을, 나는 대학 4학년이라 취업 준비에 바빴고 청춘이 가는 것이 아쉬워 학사주점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반지하방에 귀뚜라미가 출몰했다. 귀뚜라미를 징그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릴적 고향집 조그만 방에서 익히 보던 미물인지라 나는 오히려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던 그해 겨울, 우울하고 비참하고 잔혹한 그해 겨울을 나는 잊지 못한다. IMF가 터졌기 때문이다. 기적처럼 취업은 되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은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웠고 세상은 차갑고 매서운 바람으로 가득했다.
역대 최강이라던 한국 국가대표팀이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프랑스 월드컵을 마감한 1998년 여름. 주말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피곤한 몸을 실었다. 차창에 빗방울이 토닥토닥 부딪혔다. 그런데 갑자기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더니 이윽고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건 결코 과장법이 아니다. 정말 양동이로 쏟아붓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