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울산공장에서 현대차노조의 2012년 임단협 출정식이 있던 6월 1일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회사 본관을 쳐다보고 있다
변창기
"정규직인 아버지는 야간 노동 때문에 혹사당하고, 비정규직 아들은 자기 처지를 비관해서 절망한다."지역 노동운동가들이 현대차 노조 파업이나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인용하는 말이다. 현재 울산이 처한 노동 환경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 생산라인은 왼쪽에는 정규직이, 오른쪽에는 비정규직이 일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른쪽, 왼쪽 모두 할 말이 많다. 수십 년간의 심야노동으로 몸이 망가졌다고 고통을 호소하며 주간 2교대제를 요구하는 정규직, 이에 반해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과 처우에 큰 차이가 나서 비정규직.
하지만 서민, 노동자를 위하겠다며 당선한 지자체장이나 지역 국회의원들은 노동자들의 호소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비정규직 관련 현대차 사태가 장기화되는 요인 중 하나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치권을 믿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사회적 합의로 마련된 법적·제도적 장치가 한낱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더 억울하다고 했다.
"가족 강요로 노조 탈퇴... 정규직은 조합원 몫"울산이 고향인 김인수(34, 가명)씨. 그는 2002년 군에서 제대한 후 현대차 하청업체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아버지가 지인을 통해 업체를 소개했다. 그는 정규직과 함께 1~2년 일을 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정규직에 비해 총임금이 절반도 되지 않아 화가 났다. 2004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으로 비정규직노조가 조합원 배가운동을 할 때 그는 비정규직노조에 가입했다.
하지만 그는 2010년 말 노조를 탈퇴했다. 당시 노조는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5일간 공장점거 농성을 벌였고, 이때 업체 사장이 그의 아버지를 찾아와 아들의 노조 탈퇴를 강요하다시피 했다.
아버지 김상준(58, 가명)씨는 "노조에 그대로 뒀다가는 아들이 잡혀가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들 김씨는 "그때 아버지와 심하게 다퉜다"며 "조합원으로 있어야만 파업 후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아버지를 설득했지만 아버지 생각은 그 반대였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비정규직노조가 벌이고 있는 파업을 유심히 보고 있지만 동참은 않고 있다. 그는 "나도 '비정규직은 억울하다'고 소리 지르고 싶지만 이제 그럴 용기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나도 비정규직이 불공평하고, 근태가 좋으면 회사가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막강한 대기업하고 싸워봐야 상처만 남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아들 김씨는 "그동안 고생한 노조 간부들이나 지금도 밤낮으로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조합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혹시 대법원 판결에 따라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그것은 노조 활동을 많이 한 조합원들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회사가 3000명을 정규직으로 한다는데, 그건 정년퇴직하는 정규직 자리를 메우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노동부, 대법원 모두 불법 파견이라고 해도 이뤄지는 게 없다. 우리나라의 법적장치가 너무 허술한 것 같다"고 말했다.
34세인 김씨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존심이 무척 강한 아들이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결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며 "울산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가 너무 나고, 주변에서 바라보는 눈이 있으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