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에서 김애숙씨가 딸 손시원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큰딸 손지혜는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찾아와 엄마 앞에서 자연스럽게 혼자 책을 읽고 있다.
유성호
'성대골 마을학교'가 문을 연 것은 지난 4월. 창고로 쓰던 40평 남짓한 공간이 방과 후 학교로 변신했다. 학생 수는 30명. 선생님은 아이들의 엄마들이다. 15명의 엄마들은 4개조로 나뉘어 한 달에 5번씩 '쌤'으로 나선다. 이날은 강수연(42), 김애숙(36), 최경희(47)씨가 당번.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어지른 것 치우느라, 먹거리 챙겨주느라 세 엄마들은 분주했다.
15명의 엄마들이 모이게 된 것은 마을학교 1분 거리에 있는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관장 김소영)'을 통해서다. 2010년 10월 개관한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은 상도 3,4동을 비롯해 인근 주민 250여 명이 월 5000원에서 2만 원을 내는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학원 가기 전에 시간이 비어서 도서관을 찾았다는 혜연(11)이와 지우(11)는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책을 집어 들었다. 혜연이는 친구에게 추천 받았다는 <잠옷파티>를, 지우는 <책 먹는 여우>를 읽었다. 집에서 가깝고 책도 많아서 일주일에 2~3번씩은 도서관을 찾는단다. 혜연이는 "학교 도서관은 딱딱한 분위기인데 여기 오면 친구들과도 놀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25평 규모의 도서관에는 5800여 권의 책이 빽빽하게 꽂혀있다.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이 생기기 전, 상도 3,4동에는 주민센터 마을문고 이외에는 책을 빌려볼 곳이 없었다. 김소영 관장(43)을 비롯해 마을문고를 자주 찾던 주민 4명이 책 읽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냥 책 읽고 토론하자고 모였는데, 음식물 쓰레기를 줄였으면 좋겠다 싶어서 지렁이 분양하고, 골목길 버려진 화단에 국화 심고, 그러다가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 동네에서는 제일 가까운 도서관이 마을버스 두 번 타고 나가야 하거든요. 주민센터에 있는 마을문고는 너무 협소하고요." 칠순잔치에서 받은 100만 원 쾌척한 동네 할머니 2010년 7월, 마을도서관 만들기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돈. 평범한 '동네아줌마'였던 김소영 관장은 두 달간 동네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현황조사부터 했어요. 이 동네 교회가 몇 개인지, 어린이집이 몇 개인지, 부동산 다니면서 상가 주인이 누군지. 하루는 태권도 관장님이 오라고 해서 갔더니 차 한 잔 주면서 '왜 그러고 다니냐. 쓸데없이 욕먹지 말고 접어라'고 설득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그럴 에너지 있으면 다른 걸 하라'고 충고도 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마트 점장님인데, 사장님이 제가 놓고 간 리플렛 보고 10만 원 카운터에 맡겼다고. 그게 첫 모금이었어요.그 뒤에는 어떤 할머니한테 전화가 와서, '자네가 도서관 만든다고 다니는 사람인가' 하면서 몇 시까지 3동 주민센터로 나오래요. 그러더니 근처에 있는 은행에서 100만 원을 현금으로 찾아서 주더라고요. 칠순잔치에 아들이 한복 해 입으라고 준 돈인데 아이들 책 사라고. 하루는 제가 약을 샀는데 흰 봉투가 있어서 보니까, 약사가 환자들한테 만 원, 5000원씩 돈을 모았더라고요."11년째 상도동에 살고 있다는 김소영 관장은 "지금까지는 밤이면 잠만 자러 왔던 동네였는데, 두 달간 마을을 쭉 돌면서 '이 사람들은 내가 한 말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슨 희망을 걸었기에 지갑을 열었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그 때 이 일을 반드시 할 수밖에 없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모금과 일일호프, 단체 지원 등을 통해 도서관 '건립' 자금 2000만 원 정도가 모였다. 1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기금을 낸 발기인은 50여 명. 모두 주민들이다. 책은 출판사와 작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기증받았다.
도서관 운영에도 주민들이 직접 나섰다. 2011년 1월부터 자원활동가 8명이 돌아가면서 '도서관 지킴이'로 활동했다. 도서관 운영 전반에 대해서는 역시 주민들로 구성된 운영위원 10명이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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